Thursday, September 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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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의 오늘의 역사, 내일의 역사 (3): 발칸반도의 전쟁 및 평화정착, 그리고 유사한 역사를 겪은 한반도의 평화정착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80년전 1941년 4월 6일.

발칸반도에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가 결성한 유고슬라비아왕국(The Kingdom of Yugoslavia)이 히틀러의 나치독일 및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동시 침공으로 지구상에서 사라진 날이다.

마치1910년 8월 29일 조선왕국이 나치독일 및 파시스트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해외 식민지 공략에 광분한 일본 제국에 의해 강제병합 당해 지구상에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다.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는 뿌리가 같은 동일민족으로 언어도 라틴문자와 크릴문자가 다를 뿐 어휘 및 문법 등이 포괄적으로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크로아티아인들은 카톨릭교도가 다수인 반면 세르비아인들은 러시아 정교회 신자가 다수로 종교만 다를 뿐 상호 결혼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는 1918년 12월 1일부터 1941년 4월 6일까지 22여년간 함께 유고슬라비아왕국아래 단일국가를 유지했는데 그만 히틀러 및 무솔리니의 제국주의 식민지 확대전략에 의해 무너져버리고 만 것이다.

앞서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를 지배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제1차 세계대전(1914년~ 1918년)에서 패배하고 붕괴하자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는 인접한 조그만 슬로베니아를 끌어들여 셋이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구성한 것이다.

우리와 알기 쉽게 비교해본다면 크로아티아인은 ‘고구려인’, 세르비아인은 ‘신라인’, 슬로베니아인은 ‘백제인’으로 비견(比肩)해보면 이해가 쉬워진다.

하지만, 오스트리아를 1938년 4월 합병한 나치 독일의 히틀러가 그 다음해 1939년 9월 1일 인접한 폴란드를 침공, 제2차 세계대전으로 돌입하면서 1941년 4월 6일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히틀러 및 그와 손잡은 무솔리니의 협공으로 22여년만에 와해되었다.

여기서 크로아티아인과 세르비아인의 비극적인 원한의 씨앗이 시작됐다.

크로아티아출신의 극우적 카톨릭신자인 안테 파벨리치(Ante Pavelić, 1889년 ~ 1959년)가 조직한 우스타샤 (Ustaša, 크로아티아 혁명운동)가 히틀러 및 무솔리니의 지원아래 ‘크로아티아 독립국'(the Independent State of Croatia)이라는 괴뢰정권을 이끌면서 러시아 정교회 신자들인 세르비아인을 비롯하여 유대인과 집시 등 70여만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는 북한의 별종 공산주의자 김일성이 소련의 스탈린 및 중국의 모택동의 지원아래 6-25 전쟁을 일으켜 남침, 동족인 남한의 자유 민주시민들을 대거 학살한 것과 비견(比肩)될 수 있다.

그 결과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는 뿌리가 같은 동족이지만 관계가 원수지간으로 벌어지고 만다. 공산주의 북한이 6-25 전쟁을 일으켜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적 참상을 벌이는 바람에 자유민주주의 남한과 적대관계가 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히틀러가 1945년4월 30일 독약을 먹고 권총으로 자살함에 따라 그 다음달 5월 나치독일은 연합국 및 소련에 항복, 2차세계대전이 종식되자 안테 파벨리치는 스페인으로 도피한다.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된 발칸반도에 크로아티아인 아버지와 슬로베니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민족적 공산주의자 요시프 티토(1892년 ~ 1980년)가 반(反)파시스트 파르티잔 전력을 내세워 종 반년이 지난 1945년 11월 29일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부활세력을 배척, 군주제를 폐지하고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등 6개 공화국으로 이루어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을 출범시켜 무려 35년간을 통치한다.

그러나 1990년 동유럽 공산국가들 및 공산주의 맹주국 소련이 공산 체체의 구조적 병폐로 인해 스스로 차례차례 붕괴되는 자유민주화 도미노현상으로 유고슬라비아 연방도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로 나간다.

유고슬라비아연방 붕괴의 방아쇠를 당긴 것도 크로아티아였다. 1991년 6월 25일에 크로아티아는 유고슬라비아연방에서 탈퇴를 선언해 독립국가가 되었다.

이에 대해 크로아티아 영내에 거주하던 소수의 세르비아인들은 연방유지를 고집하는 세르비아의 지원에 힘입어 크라이나 세르비아 공화국(the Republic of Serbian Krajina)을 세우자 내전이 발생한다.

크로아티아는 자국 영내 크라이나 세르비아 공화국 반란세력 및 이를 지원한 세르비아군들을 괴멸시키고 1995년 11월 전쟁을 승리로 끝냈다.

크로아티아로 침공했던 세르비아의 패장 밀로세비치 대통령 인종학살 및 반인도범죄행위로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되고 나서 재판도중 교도소에서 2006년 3월 심장병으로 숨지고 만다.

앞에서 비쳤듯이 크로아티아는 카톨릭 신자가 다수인 반면, 세르비아는 러시아 정교회 신자가 다수인지라 종교적 갈등에다 무엇보다도 나치독일의 지원아래 크로아티아 괴뢰정권이 세르비아인 70여만명이나 학살한데 대한 보복의 심정으로 세르비아가 1991년 연방탈퇴를 빌미로 크로아티아를 선제 공격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발칸 전쟁은 1995년 11월 독립의지가 굳건한 크로아티아가 서방진영의 응원속에 승리로 끝나고 만다. 즉 연방이라는 하나의 나라로 억지로 묶으려 시작한 세르비아의 통일전쟁은 실패로 끝난 것이다.

그 이래 과거 유고슬라비아 왕국(1918년-1941년) 시절처럼 두 나라가 다시 하나로 화합하여 상호왕래 및 결혼이 자유롭게 이뤄지고 있다.

다시 말해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는 4여년 전쟁의 참화를 극복하고 이젠 ‘1민족 2국가의 평화체제’를 구축한 셈이다.

우리 남북한도 3여년간의 한국전쟁을 치렀고 휴전상태이지만 굳이 하나의 나라로 합치려는 환상적인 무리한 통일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이젠 ‘1민족 2국가의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과거 우리 한반도에서 통일 신라(676년 ~935년)와 발해(698년 ~ 926년)가 200여년간 큰 전쟁없이 평화 공존했듯이 ‘1민족 2국가의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억지 통일지향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성사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연방제 통일(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흡수통일 (서독과 동독), 무력통일 (북베트남과 남트남)등 이미 통일의 선레들이 전세계에 몇 가지 있지만 우리 남북한은 이 세가지 모두 적합하지가 않다고 본다.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처럼 우리 남북한도 ‘1민족 2국가의 평화체제’를 구축하면 실질적으로 통일과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물론 북한이 먼저 핵무기 철폐를 선언하고 시행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그리고 나서 남북한이 군축회담을 통해 적절한 수준으 군인 및 무기를 대폭 줄이고 동시에 남북한 사람들의 자유왕래를 차례차례로 늘려 나가면 굳이 억지 통일하지 않아도 통일과 진배없는 평화체제가 될 수 있다. (김정남, 토론토 거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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