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기후, 식량, 환경 등 각종 위기도 심각하다지만 구체적 행동은 없다. 물론 ‘나 말고 누군가 하겠지’라는 책임감 분산의 심리도 있겠지만 달리 생각하면 ‘견딜 만하니까 저러고 있겠지’라는 위안도 한몫 차지하고 있다.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면서도 사람들이 ‘멋있다’고 하면 덩달아서 그렇게 말한다. 소문난 식당에서 음식 맛이 별로 여도 줄지어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 입이 문젠가’라며 왜곡한다. 특정 문제에 대해 판단할 때, 다수 의견에 영향을 받아 자기 의견을 잘못된 것으로, 반대로 자기 의견을 다수 의견으로 착각할 때가 있다. 이것을 다원적 무지 (Plurastic Ignorance)라고 한다.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인해 유사한 콘텐츠만 보다 보면 사람들 생각이 다 나와 같다는 확증 편향에 빠진다. 그래서 선거 때가 되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될 것 같고, 상업적 미디어는 대세론으로 여론몰이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과 공존하기 위해 없는 문제를 만들기도 하고, 있는 문제를 없애 버리기도 한다.
끼리끼리 모인 집단에서 과연 지성이 발휘될 수 있을까! 집단지성은 다수의 개체들이 협력해서 발휘하는 능력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개체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다수가 똑같은 속성을 지녔다면 다양한 생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설사 반대의견이 있더라도 말하기 거북스러워 ‘Yes’를 남발한다. 그리고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란 생각에 못 본 척하고 만다. 더구나 그들이 선민의식까지 가졌다면 집단지성은 커녕 집단 사고의 폐해만 계속될 것이다.
권력자만이 아니라 누구나 똑같다. 비슷한 사람들하고만 소통하고 반대 목소리에 귀를 막는다면, 전문가의 권위에 휘둘려 그들이 말하는 대로 포장하고, 유명인들이 행동하는 대로 따라한다면, 자신이 주인공이어야 할 삶에서 조차 지나가는 행인1일 수 밖에 없다. 미-중은 다시 냉전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사회도 진영논리로 더욱 양분되고 있다. 내편이 누구인지 줄서기를 강요하고 있다. 이럴 때일 수록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지 못한다면 집단의 일원이 아니라 집단에 매몰된 다수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 강래경: www.connect value.net 수석교수, (사)한국강사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