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질의 프로그램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TV는 킬링 타임용이다. TV 때문에 똑똑해졌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고 순기능에 대해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텔레비전의 어원 (그리스어 ‘tele 멀리’와 라틴어 ‘본다 vision’)인 먼 곳의 정보는 인터넷이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TV는 여전히 ‘바보상자’다.
채널은 무지하게 많아 졌어도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먹방과 여행은 기본, 최근엔 골프가 난리라고 하니 온통 골프, 연예인 2세는 당연하고, 친구, 사돈, 사위, 형제자매, 조만간 3세까지 나올까 불안하다.(캐나다 TV도 그런지 궁금하다) 체육인들도 은퇴하면 TV 진출이 공식처럼 되었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유명 연예인이 친한 연예인 (결국은 같은 기획사)을 교차 출연시키며 비슷한 프로그램에 겹치기로 나오는 것이다. TV가 소수의 힘 있는 자들에 의해 노골적으로 상업화 되고 있다. 가관이다.
때문에 TV는 바보상자가 아니라 괴물이다.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PD들은 유튜브나 남의 것을 복사해서 붙이고, 연예인들은 똑같은 얘기를 사골처럼 우려먹는다. 언제 시작한 것인지 몰라도 자막은 시청자들의 생각과 감정까지 조작하려고 한다. 특히 ‘방송국 놈들’이란 자막을 써가며 자신들의 폭력성과 가학성을 웃음으로 얼버무린다.
알지만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 그리고 욕을 해도 볼 것이고, 당신도 TV에 나와서 유명해지고 싶지 않냐며 조롱하는 것 같다. 최근 방영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다수는 경계하지 않고, 힘 있는 사람은 신경 쓰지 않는 세상이다. 하지만 소수는 다수의 시선을 의식하고, 힘 없는 사람들은 언제나 가장 먼저 고통받는다”는 대사가 나온다. 하지만 TV는 소수이면서도 권력이다 보니 다수를 무시한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시대 활동했던 Oscar Wilde는 당시 영국의 위선을 날카롭게 풍자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탐미주의(유미주의)자로 사회, 정치, 종교의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목적에 충실한 예술을 추구했다. 긴 머리와 괴상한 옷차림, 그리고 가슴에는 항상 꽃을 달고 다녔으며 “너 자신이 되어라. 다른 이들의 모습은 이미 주인이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TV가 멀리 보지 못한다면 더 이상 TV가 아니다. 그런데도 힘 가진 자들을 대변하며 자기 손익만 따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도 TV는 볼 게 없다.
(■강래경: www.connect value.net 수석교수, (사)한국강사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