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 플랫폼을 빠르게 통과하는 열차가 있다. 어디로 가는 열차인지 궁금해서 옆면의 행선지를 보려고 해도 너무 빨라서 식별할 수 없다. 세상도 이처럼 빠르게 변하다 보니 실체를 파악하기 점점 어려워진다.
이름하여 Big Blur 시대다. Blur는 ‘희미하다’는 뜻으로 안개 낀 날 아는 길을 가면서도 확신할 수 없는 모호한 상태와 같다는 것이다.
스타벅스는 커피예치금으로 무려 20억달러를 가지고 있다. 미국 내 4500여 은행 중 3900개(87%) 은행의 총자산이 10억 달러가 안된다고 하니 스타벅스는 더 이상 커피회사가 아니다.
실제로 아르헨티나 중앙은행과 파트너십을 맺고 금융업무를 보는 카페를 개설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IT기업들이 금융업에 진출하였고, 통신회사들은 유통업으로 영역을 넓히는 등 업종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있다.
기업 뿐만 아니다. 코로나, 전쟁, 기후와 환경 위기 등으로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도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외면하거나 살던 대로 살면 그만이라고 태평하다면 변화맹 (Change Blindless)이다. 글자를 모르는 문맹이나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르는 컴맹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변화맹은 주의력이 분산되거나 선택적 지각 때문에 눈앞의 고릴라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투명 고릴라 실험은 99년 미국 심리학자 Daniel Simons, Christopher Chabris가 실시했다. 공놀이 하는 사람들이 패스를 몇 번 하는지 세어보라고 한 후 실험 도중에 고릴라 복장의 사람을 지나가게 했는데, 실험이 끝난 후 고릴라를 보았는지 물어보니 절반 이상이 못 본 것이다.) 하지만 뒤늦게 깨닫았을 때는 변화가 아니라 위기의 상황이다. 때문에 더 민감해져야 한다.
아프리카 주민들은 야생 육식동물들에게 가축이 잡아먹힐까 늘 불안하다. 그래서 재미난 실험을 진행하였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연구진은 보츠와나 지역에서 4년간 소의 엉덩이에 눈을 그려 놓았는데, 놀랍게도 한 마리의 소도 사자의 공격을 받지 않은 것이다. 사자는 소 엉덩이의 눈이 자신을 노려 본다고 느껴 접근하지 못했던 것이다.
황당하기는 하지만 확실히 효과가 있었던 만큼 우리도 변화를 직시하려는 용기만으로도 어쩌면 걱정의 절반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 강래경: www.connect value.net 수석교수, (사)한국강사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