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범이란 공동체가 지속하기 위하여 모든 구성원이 예외없이 지켜야 하는 마땅한 도리를 의미한다. 따라서 문화적 규범은 특정 집단이 공유하는 믿음, 가치관, 관습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그 안에서 상호작용하려면 문화는 필수적이며, 규범을 기준으로 바람직한 행동과 그렇지 않은 행동을 구분한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이기적인 인간은 별나게 행동하고도 뻔뻔하게 합리화한다.
그래서 강제규범으로서 법이 필요한 것이다. 법학자 Jhering은 “강제성 없는 법은 타지 않는 촛불과 같다”며 사회질서를 위해 엄격한 적용을 강조하고 있다. 법은 나쁜 인간을 단죄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그들로부터 착한 인간을 지켜주는 수호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 집행기관이 앞장서서 불법을 합법으로 둔갑시키고, 없는 죄를 만든다면 규범이란 이름의 합법적 폭력이다.
지금 중동은 일촉즉발이다. 핵 위협을 빌미로 이스라엘이 이란을 침공하더니 급기야 미국까지 참전했다. 톰크루즈 주연의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잠재적 폭력을 제압하기 위해 실제적 폭력을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강제 휴전을 시킨 후 언제든지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공격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미국은 오랫동안 세계 평화의 수호자였다. 그로 인해 많은 나라들이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고, 미국의 노력에 존경을 표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미국은 규범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자기마음대로 규범을 만들고 따르도록 강요한다. 관세전쟁, 기후조약, 방위비 협상, 그리고 내부적으로 이민자 단속까지 시한폭탄이 한 둘이 아니다.
이것은 트럼프 한 명의 문제가 아니다. 그를 선출한 미국민의 책임도 아니다. “No King” 시위로 트럼프를 압박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지키려는 나쁜 집단의 힘이 견고한 탓이다. 우리나라도 그렇다. 나쁜 자들은 미디어를 통해 자신들 규범을 집요하게 홍보하고, 법 집행기관은 여전히 공정하지 않고 선택적으로 법을 적용한다.
이유가 무엇이든 힘의 절대적 차이에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공격하는 이스라엘의 행동은 정당화할 수 없다. 미국이기 때문에 그래도 된다는 믿음은 폭력이다. 돈의 유무로 죄의 유무죄가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한 공동체는 부패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지난 정부는 엉망진창이었다. 부디 모든 사람이 신호등이 빨간불이면 서고, 파란불이면 가는 상식적인 세상에서 살 수 있는 날을 새 정부에 기대해 본다.
(■ 강래경: www.connect value.net 수석교수, (사)한국강사협회 회장, Instagram @KANG.NAE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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