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No’라고 할 때 ‘Yes’ 할 수 있는 것, 혹은 그 반대가 가능한 것이 민주주의이다. 그런데도 리더의 한마디에 모두가 눈치를 보며 ‘Yes man’으로 화답한다면, 21세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전설 속 인물인 아서왕은 기사들과 격의없이 원탁에 앉아서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식탁은 계급적이며 정치적 의미가 있다. 왕과 겸상한다는 것은 호가호위할 수 있는 빌미가 될 수 있으며, 여럿이 앉을 때는 순서에 따라 권력이 매겨진다.
하지만 아서왕은 자신의 식탁에서 이러한 위계를 없애버렸다. 모두 동등하고 오직 ‘동료’ 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원탁에 앉은 일반 기사들은 왕을 의식하지 않고 발언하게 되는데, ‘원탁회의’도 여기서 유래했다. 그래야만 집단 지성, 즉 ‘원탁의 지혜’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리더가 불편한 사람과는 식사는 커녕 함께 자리에 앉지도 않는다면, 자기 편 사람들도 선별적으로 밥을 먹이며 서로 충성 경쟁을 시킨다면,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는 가장 나쁜 일을 하는 것이다.
중세 성인을 추대할 때 흠결을 찾아내는 일을 하는 사람을 Red Team이라고 했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면서 선의의 비판자 역할을 맡는 악마의 대변인 (Devil’s Advocate) 같은 개념이다. 2차 대전 때는 미군이 아군 (Blue Team)의 취약점을 파악하기 위한 모의 군사훈련에서 가상의 적군을 레드팀으로 지칭하기도 했다.
권력자의 결정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쉽지 않은 만큼 제도적으로 보완했던 것이다. 또한 한 쪽 눈으로 세상을 균형있게 볼 수 없는 만큼 반대하는 눈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그런데도 무능함을 숨기려는 리더들은 자기가 해봐서 안다고 말한다. 그러면 팔로워들은 침이 마르게 용비어천가를 부른다. 그러다 균형을 잃고 정말로 하나의 날개로 하늘을 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반대 의견을 반대한다. 레드팀은 고사하고, 빨간불과 파란불도 구분하지 못하는 색맹은 아닌지 걱정된다.
(■ 강래경: www.connect value.net 수석교수, (사)한국강사협회 회장, Instagram @KANG.NAEKY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