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게 되는 연말이다.
계획한 일들은 모두 이뤘는지, 그 과정에서 자랑스럽거나 상처받았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반대로 주변 사람들에게 소홀해서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은 아닌지… 비교적 객관적으로 자신을 보려고 하지만 그래도 사람인지라 조금은 자신에게 관대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권력자는 그러면 안된다. 그래서 법치주의가 탄생한 것이다. “국왕일지라도 신과 법 밑에 있다”고 주장하며 영국 헌정상의 원칙으로 확정되었다. 즉, 절대 군주의 권력을 견제하고 자의적인 통치를 막고,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국회에서 제정된 법률에 의해서만 통치하게 한 것이다.
그런데 법이 아니라 사람이 문제다. 권력자 입맛대로 판결한다. 법치주의라는 이름으로 인치주의가 판을 친다.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했다고 하지만 가슴은 먹먹하고 화가 난다. 운동경기의 승부가 열심히 뛴 선수가 아니라 심판에 위해서 좌우되는 것과 다름없다.
한 걸을 더 나아가 법을 이용하기도 한다. 국민을 위해서라는 법 정신은 사라지고, 소위 법 기술자들이 유죄를 만들려고 재판을 하고 있다. 형식적 법치주의다. 독재국가나 경찰국가도 법은 있고, 나치정권도 법대로 범죄를 저질렀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모든 일을 법의 잣대로 해결할 수는 없다. 딱딱한 잣대로는 패이고 휘어진 것들을 재단하기 힘들다. 그래서 재판할 때도 “정상(사정과 상황)을 참작하여” 죄의 형량을 줄이거나 가볍게 하는 인지상정이 필요하다. 그것은 고무줄 잣대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암묵적으로 합의한 통념이자 지혜다. 그런데도 법의 논리로만 단죄하려는 것은 ‘법대로’가 아니라 권력자 ‘마음대로’에 불과하다.
사람들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때 “법대로 하자”고 말한다. 법을 신뢰할 때 가능한 일이다.
만약 ‘법’이 권력자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도구라면 공동체는 나뉠 수 밖에 없다. 양육강식의 정글처럼 권력을 쥐기 위해 온갖 불법이 난무할 것이다. 어차피 승리하면 합법으로 포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희대의 판결이 그렇고, 트럼프도 대통령 당선직후 특검에서 기소를 포기했다.
우리나라 경제가 최악인데, 정의에 대한 희망마저 얼어붙는다면 광장은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할 수밖에 없다.
(■ 강래경: www.connect value.net 수석교수, (사)한국강사협회 회장, Instagram @KANG.NAEKY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