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게임(중구, 항저우)이 막바지 열기로 뜨겁다. 스포츠 행사때마다 참가에 의의가 있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과거 동구권 국가들은 체제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도핑 (금지약물복용)을 해서라도 메달을 따려고 했다.
선수들의 건강보다 국가의 이익이 중요했고, 개인보다 국가가 먼저였다. 때문에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선수들은 죄 지은 사람 마냥 고개를 숙였고, 은메달을 따고도 더 잘 하겠다고 반성의 다짐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까지 경쟁에만 골몰하지 않는다. ‘숙명의 라이벌’ 같은 비장함도 찾아 보기 어렵다. 오히려 MZ세대들은 특별한 경험이니까 마음껏 즐기겠다고 한다. 그래서 승부는 치열해도, 결과가 나오면 서로를 축하하고, 위로해주는 동료애를 보여 준다.
이런 변화를 반영하듯 2021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새로운 슬로건이 채택되었다. 무려 127년만의 일이다. ‘더 빨리 (faster), 더 높이 (higher), 더 힘차게 (stronger)’에 ‘다 함께 (together)’를 추가한 것이다. 승부는 불가피하더라도 함께 공존해야 함을 잊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경쟁하자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함께하자던 상대가 자기 이익에만 충실하면 어쩔 것인가? 계속 호구가 될 수는 없고, 그렇다고 똑같이 할 수도 없는 일이다. 1968년 생물학자 Garrett Hardin은 이기심으로 인해 공유 자원을 남획하게 되면, 궁극적으로 사회 공유재가 고갈되어 공멸하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른바 ‘공유지의 비극 (Tragedy of the Commons)’이다. 예를 들어 마을의 공동 목초지에 자기 양들을 더 많이 방목하는 것이 이익이라 생각해 서로가 가축을 늘리게 되면 결국 공유지가 황폐해지고, 양들은 소멸될 수 밖에 없다는 이론이다.
‘함께’는 입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배려와 책임있는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그런데도 모두의 바다에 핵 쓰레기를 내다 버리면서 과학적으로 괜찮다고 억지를 쓰는 나라가 있다. 그 나라의 주장에 맞장구치며 세금으로 홍보까지 하는 나라도 있다. 자기 국민들이 걱정을 하는데도 괴담 선동이라고 다그친다. 아마도 ‘함께’ 하자는 말은 ‘모두’가 아니라 자기 편끼리만 그러자는 말인가 보다.
(■ 강래경: www.connect value.net 수석교수, (사)한국강사협회 회장, Instagram @KANG.NAEKY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