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를 타면 기장이 캡틴 스피치라며 안내방송을 한다. 보통은 자기이름만 언급하는데, 얼마전 제주도를 가면서 색다른 경험을 했다. 부기장과 사무장의 이름을 언급하며 “ ~랑 함께 비행하는 기장 아무개입니다”라고 말문을 여는 것이다.
작년 9월11일 맨해튼의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911테러 20주년 추모식이 거행되었다. 쌍둥이 빌딩이었던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와 국방부에 비행기가 충돌했던 시간, 그리고 WTC가 붕괴됐던 시간과 들판에 비행기가 추락했던 시간에 맞춰 종소리가 울려 퍼졌고, 6차례 묵념도 이어졌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장면은 유족들이 차례대로 마이크를 잡고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이었다. 2983명 (9·11희생자 외에 93년 2월 WTC 테러 희생자 6명 추가)의 이름이 모두 불리기까지 4시간이 넘게 걸렸다.
행사 참석자들에겐 한없이 긴 시간이었을 지 모르지만 희생자들은 누군가의 부모이자 자녀였기 때문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름이 있었다. 가족들은 이름을 부르는 불과 5초 남짓 시간을 위해 1년을 애태우며 기다려 온 것이다.
연말연시라고 덕담을 주고 받는다. 호랑이 그림이나 일출 사진에 좋은 글을 적은 디지털 카드가 카톡에 쌓여간다. 가끔은 같은 모양의 카드를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받기도 한다. 직접 만든 것이 아니니까 당연히 이해가 되는 일이지만 당황스러운 적도 적지 않다.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경우다. 첨부된 문자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딸랑 규격화된 카드 뿐이다. 카톡 사진을 뜯어봐도 모르겠으니 그냥 무시할 수 밖에 없다.
더 답답한 것은 첨부문자에 내 이름까지 있지만 내용이 의례적이어서 도무지 누구인지 모르는 경우다. 전화번호도 저장되지 않은 걸 보면 적어도 1~2년은 상관없이 지낸 사람인 건 분명한데, 내 이름까지 적었으니 답장을 안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누군지도 모르면서 답하는 것도 난센스 같아서 곤혹스럽기까지 하다.
우리는 혼자 살 수 없음을 잘 안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일상을 영위하고 있는 것은 의료진의 분투와 소상공인의 피눈물 덕분이고 그렇게 말은 한다.
하지만 내 가족, 내 친구가 아니고는 실재감이 없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시처럼, 한 해의 시작이니 만큼 스팸 같은 인사로 지나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며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려 봄이 옳지 않을까! (강래경: www.connect value.net 수석자문위원, 고려대-이화여대 평생교육원 코칭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