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September 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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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래경 칼럼] 코로나19가 끝나고 나면 …

백신 보급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 보니 코로나로 인한 스트레스는 여전하다. 물론 코로나가 종식되어도 이전으로 돌아가기 (Back to Normal)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새로운 일상 (New Normal)에 대한 불안과 걱정도 한동안은 계속 될 것이다.

하지만 미증유 (未曾有)의 상황이고 인류가 엄청난 희생을 치른 만큼 교훈은 필요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보는 사람, 눈 앞의 것만 보는 사람, 보지 않는 사람. 눈 앞의 득실만 쫓는다면 소도 잃어버렸는데 외양간을 고칠 필요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큰 소가 눈앞에 있어도 잡을 기회를 놓치고 말 것이다. 아예 보려고 하지 않는다면 코로나는 그저 시련으로만 기억될 것이다. 외양간을 안고치는 것이 아니라 소를 잃었다는 현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다만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The future is already here. It‘s just unevenly distributed.)”라던 William Gibson의 말처럼 지금, 여기서의 상황을 주목해 보면 3D (Digital, Divide, Distance)로 정리할 수 있다.

디지털 사회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정형화되고 반복되는 일은 점차 로봇의 몫이 될 것이고, 우리가 믿는 지식과 기술의 반감기는 빨라질 것이다. 따라서 재학습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습관이 될 것이다.

양극화도 심해질 것이다. K자 회복으로 예견되는 빈부차로부터 디지털 문해력 격차로 인해 생활전반에서 차이가 극명해 질 것이다. 지금도 키오스크나 금융거래에서 디지털 소외현상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집단간 거리도 더욱 더 멀어져 반목과 갈등도 심해질 것이다. 하나의 유럽을 표방했지만 코로나 전파를 막으려고 국경을 폐쇄하고, 백신쟁탈전을 벌이는 것을 보면 “나만 아니면 돼”라는 이기주의가 팽배해진 느낌이다. WHO는 공간적 의미를 강조한 물리적 거리두기 (physical distancing)로 표현하기를 권장한다. 자칫 사회적 거리두기가 인간활동 자체의 단절과 고립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자 사회화 학습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성인들은 탈사회화로 가고 있는 듯하다. 어쨌든 ‘살다보면 살아진다’는 노랫말처럼 이 순간도 흘러갈 것이다. 다만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강래경. www.connect value.net 수석자문위원, 고려대-이화여대 평생교육원 코칭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