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ior Column) 이민 온 맏며느리의 고민

BY OLIVIA DO

아들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시부모는 맏며느리인 나에게 종종 이런 질문을 하신다. “생전에 아들 한 번 더 보고 죽을 수 있을까?” 말씀으로는, 당신들끼리 서로 한번 해 보는 얘기라 하셨지만 전화를 끊고 나니 계란유골이 따로 없음을 깨닫는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집에만 계시는게 더 좋을 것” 이라 권해드리자, “공기 좋은 시골이라 괜찮다”는 말씀 끝에 이 질문을 하셨다. 때가 때인지라 “백지 쓸데없이” 하는 말씀이 왠지 더 진지하게 들린다.

시부모는 내가 결혼할 당시부터 큰아들집인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 살기를 원했다. 남성 가부장제의 오랜 전통인 장남에 대한 기대 덕분이었다. 갓 새댁이었던 나는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댁 문화와 관습, 시부모가 일방적으로 주는 사랑과 기대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3년의 결혼 생활이 흘러갔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우리는 시부모의 바람과는 더 멀리 나아가게 되었다. 시부모에게 점수를 잃지 않고 뜻을 거스를 수 있는 직장 전출 탓이었다. 시부모 당신들이 “우리 아들이 진주만 살았더라도. . . “할 때, 우리는 부산에 살았고, “부산만 하더라도 좀 나은데 . . .” 할 때 우리는 서울에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서울에서 좀 더 오래 있겠구나” 할 때, 우리는 이미 캐나다 땅에 있었다.

시부모 말씀대로 아들 공부를 덜 시켰으면 (시부모님이 주장하시길, 학교를 제대로 나오지 못하면 하는 일이 일정치 않아 부모집에 자주 들른다고 하신다) 언제든지 왔다 갔다하며 시부모와 왕래를 더 자주 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것이 효자의 길이었을 것이다. 당연히 그런 관점으로 보면 우리는 아주 불효자이다.

그러나, 조상이나 부모를 잘 모셔야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한국 전통 효사상을 아주 강하게 가진 시부모의 바람은 독립적인 생활과 자녀 대신 전문 서비스원이 부모를 돌보는 시대로 접어들자 그냥 물거품으로 바뀌었다. 북미에만 약 7백개의 프랜차이즈를 가진 미국의 홈 인스테드 시니어 케어가 전세계적으로 약 1천개에 이르는 프랜차이즈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세상이 많이 달라졌음을 뒷받침한다. 시어른들도 세월이 바뀌었음을 인정은 한다.

올해 시아버지는 84세, 시어머니는 80세이다. 당신들 말씀에 따르면, 당신들은 언제 돌아가실 지 모른다. 이 연세까지 살아본 적이 없는 나는 아무리 이해한다 해도 당신들의 뜻을 다 헤아릴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길로 떠날 수 있는 날을 대비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지는 대충 이해가 된다.

평생 일구어 놓은 것을 놔두고 “쥐도 새도 모르게 (어느 누구도 죽음의 순간을 알 수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사랑하는 자식들을 오늘 내일이라도 당장 떠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두려운가?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죽음을 기다릴 수도 없고, 죽을 날을 받아놓은 것도 아닌데 아무 것도 안하고 있자니” 마음이 힘들 것은 뻔하다.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그 길을 자의가 아닌 자연의 섭리에 따라야 하는 그 마음이 어떨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말씀이었다.

그러는 동안, 시어른들은 저 세상으로 가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나씩 해오고 있었다. 토지 전답을 자식들에게 이양하며 일부를 정리했고, “돼지잡는 날 (시어른들은 언제나 초상치는 날을 돼지잡는 날에 비유하신다) ” 을 이미 장남과 이야기했으며, 어느 곳에 묻힐 지도 대충은 생각해 놓으신듯 하다.

시어른들은 만약 죽지 않고 살아있지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경우를 대비해 이미 요양원 방문도 여러차례 하셨다.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사람이 사망하는 나이를 최빈사망연령이라고 하는데, 2020년에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망하는 나이는 어림잡아 약 90세 정도가 될 것이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아직 그 연세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사람 목숨은 시간에 달려있지 않다.

당연히 시어른들은 요양원에 들어가는 돈이 얼마가 될 지도 파악해 놓았다. “아무리 싸도 귀저구 값 포함해서 한달에 170-200 만원은 들어간다.” 의료비와 간병비가 부담스럽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치매 걸린 부모를 좋아하는 자식들이 없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어떻게 해야 치매에 걸리지 않을 지도 연구하였다. “만약에 죽지도 않고 정신없는 상태로 오래 살면 자식들을 제일 힘들게 하는 일이 되는기라. 있는 돈 다 까먹게 하는 주범 아이가.” 시어른들은 노후 자금이란 것을 염두에 두고 절약해 온 적은 없지만, 밑빠진 독에 돈을 붇는 치매 질환이나 노인 병환이 당신이나 자식들의 돈을 바닥나게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늙은 나이에 돈이 없으면 사람 대접받기 힘들구마”.

시어른들은 거의 매일 다니다시피 하는 병원에 갈 때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아프지 않으려고 가는 병원인데,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고 온다. 병원비를 내고 치료를 받아도 아픈 데가 낫지를 않는다는 것이, 그럼에도 또 다시 병원을 간다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이제는 병원엘 가도 당최 듣지를 않는당께. 그 좋다는 약을 다 써 봐도 안 들으니 이제는 죽는 날만 남았제.” 또, 깜빡깜빡 하는 회수도 늘어나고 있다며 “아직 좀 더 살아야 하는데, 참 문제라서 치매 검사를 받았다”고 한다.

이 쯤되면 시어른들이 우리 자식들에게 “애 먹이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 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시어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하나도 도와주지 못하고 있으니,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참 불효막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병원에서 할아버지는 나이가 많아서 싸인을 못한다고, 자식들을 데리고 오라는데 전부 바빠서 못 온다고 했더니 그럼 입원이 안 된다고 그러더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 ‘그냥 휴직계 쓰고 한국가서 두 분이 원하시는 것 한 번 다 해드리고 싶다’는 유혹을 받고는 한다. 안타깝게도, 난 그러지를 못하고 있다.

노화는 우리 모두가 겪는 일이다. 더 이상 독립적으로 사는 일이 불가능해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옆에서 같이 병원에라도 가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하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밥맛이 없어서 식당에 들어가 점심 한그릇 시켜 먹는 일도 참 추접다. 아아들은 다 어디에 두고 혼자 왔느냐는 눈빛 때문에 그것도 참 못할 노릇”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 뭐라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 느낌도 이해한다. 그런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일을 저지를 수가 없다.

언제 한번, 몸져 누웠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나이에 이렇게 아파 아무 것도 못하고 누웠는데, 나이 80이 되면 어떤 기분일까?” 참 힘들것이란 결론이 지어졌다. “옛날에는 자고 일어나면 거뜬했는데, 이제는 병원에 다녀오고 푹 잤다 싶은 데도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옛날 같잖다. 삭신이 쑤시고, 아무래도 몸을 쓸 만큼 썼으니 기력이 없어 할 수 있는 게 없다. 뭐 이러다가 죽는 거지. 이제 갈 곳은 딱 한군데 뿐이 없다.”

시어른들 바람대로 ‘내가 시어른들 지척에 살았다면 여러가지 일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를 가끔 생각한다. 외출을 하면 차로 모셔다 드리고, 심부름이나 시장을 보고, 식사 준비에 빨래나 청소도 돕고, 복용할 약이나 민간요법 관리까지 다 책임지고 해야 했을 것이다. 시부모가 외출하지 않고 집에 있으면 말동무가 되어야 하고, 친척 대소사에 참여해야 하고, 봄날에 꽃구경을 가거나 절에 갈 때도 동행해야 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이런 일상적인 활동을 지금 시어른들은 너무 잘하고 계신다. 만성질환이나 거동 불편 때문에 신체적인 고통을 자주 이야기하지만, 그나마 다행으로 정서적 유대감을 갖고 두분이서 말동무가 되어 마음의 안정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해외에 살고 있는 나는 맏며느리로서 부모를 직접 부양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 책임이 언제나 장남인 남편과 내게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그래서, 늘 곁에 있지 못하는 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전화할 때마다 죄인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먼 거리에 있다는 것 자체로도 죄송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임종 시, 한 번 더 보기 위해 일분 일초를 다투는 것이 내 의지대로 되지 않아서이다. 이 일만큼은 내가 어찌해 볼 요량이 없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철학과 윤리학을 공부한 뒤, 하버드 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아툴 가완디 박사는, 인간다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쏟았다. 그는 요양원 노인들이 살 가치가 있다고 느끼도록 만들어주는 일이, 그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직접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는 환경이 노인들의 불안을 줄여주었다는 이야기를 Being mortal: medicine and what matters in the end 책에서 일깨워주었다.

그는 “누구나 마지막까지 가치있는 삶을 살고 싶어한다”고 주장하며, 요양원 노인들이 무료하고 외롭고 무기력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그들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 제공받았을 때라고 강조하였다.

지금 나는 캐나다에 살고 있다. 먼 거리에 있어 노시부모를 모시지 못하는 것은 해외 이민 생활 15년의 가장 큰 도전이자 아픔이다. 삶의 노년기에 있는 시어른들이 언젠가 맞이하게 될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걱정할 때, 나 역시 그 일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남편과 내게는 죽음의 문턱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걸어가야 하는 그 길을 어떻게 시어른들이 좀 더 편안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걸어가도록 만들어 드릴 것인가가 큰 숙제로 남아있다.

(도은경: 소셜워커. 에이징 스페셜리스트. 2016년 석사논문 발표, 2017년 석사졸업. 매니토바주에 걸쳐 시니어그룹과 함께 파트너쉽으로 노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프로젝트를 실시함. 2014년부터 캐나다 정부 그랜트를 4 회 받았음. HIGH5S Counseling Hub운영. 노인과 이민자가족 이슈 상담. 연락처 (204) 807-0908, high5scounseling@outlook.com)

(Senior Column) 삶의 마지막을 위한 의미있는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