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찬 Column) 어머니는 죽어서도 편지를 보냈다, 로맹 가리 가

최효찬

유대계 러시아인으로 어머니를 따라 프랑스에 정착해 소설가가 된 로맹 가리(1914~1980)의 ‘새벽의 약속’은 한 소년의 가슴에 영원히 새겨진 엄마와의 약속을 그리고 있지만 작가 자신과 어머니와의 삶의 비밀을 담고 있는 자서전적 소설로 평가된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자신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은 어머니와의 기억을 유쾌하고도 가슴 아프게 그려내고 있다. 가난과 모멸을 홀로 감수하면서도 아들의 성공을 위해 애쓴 유대인인 미혼모 어머니와 그 아들이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꿈을 이뤄가는 이야기이다.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한다. “너는 꼭 위대한 소설가가 될 것이고, 외교관이 될 것이고, 유명 여배우가 너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라고. 결국 어머니의 꿈을 이루어졌다. 로맹 가리는 어머니의 바람대로 콩쿠르 상을 두 번이나 수상할 정도로 세계문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소설가가 되었다. 또한 2차 대전 때 공군에 입대해 최고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고, 미국에서 프랑스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어머니의 ‘예언’이 모두 실현된 것이다.

부모는 자녀를 키우면서 흔히 “우리 아들 천재다”라고 말하곤 하는데, 이는 교육심리학적으로도 상당한 효과가 있다는 것이 검증됐다. 그게 바로 ‘로젠탈 효과’라고 부르는데 이를 사회심리학에서는 ‘자기 충족적 예언’이라고 한다. 타인의 기대나 관심으로 인하여 능률이 오르거나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이다. 부모의 신뢰를 받고 자란 아이는 그렇지 못한 아이보다 자신감과 신뢰, 리더십을 소유하게 되는 마법의 샘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일본 벤처정신의 상징이 되고 있는 손정의(소프트뱅크 회장)는 아버지로부터 ‘너는 천재야’라는 말을 들으면서 자랐는데 아버지의 예언대로 큰 인물이 되었다.

그런데 로맹 가리의 이 자전적 소설은 전장에 간 아들에게 보내는 어머니의 편지로 인해 더 감동을 자아낸다.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에는 홀로 아들을 키운 어머니의 비장의 무기인 편지를 통해 언제나 아들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준 어머니의 위대한 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2차 대전에 조종사로 참전한 아들을 떠나보내고 당뇨병 등으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전장에 있는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단 한마디도 내색하지 않았다. “영광스런 내 아들아,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어머니의 편지에는 아들에게 용기를 주는 문구들로 시작되었다.

소설가로 성공하기를 바라는 어머니는 전장에서 꼭 살아 돌아와 작가로서 프랑스의 최고 권위의 상인 ‘콩쿠르 상’을 수상하기를 바랐다. 그런 어머니였기에 아들은 꼭 살아 돌아와야만 하는 존재였다. 그런데 어머니는 점점 당뇨병이 악화되어 갔다. 급기야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어머니는 특단의 결단을 내리고 이를 은밀히 실행했다. 어머니는 죽기 몇 달동안 거의 이백오십 통의 편지를 기적적으로 썼고, 그것을 스위스에 있는 친구에게 보냈다. 이 편지들은 전장에 있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죽은 후에도 3년 반 동안 아들에게 보내졌다. “그리하여 어머니가 죽은 지 삼 년이 넘도록 나는 계속 내가 지탱하기 위해 필요한 힘과 용기를 어머니로부터 받았던 것이다.”

어머니는 당뇨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도 군대 간 아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살아있는 것으로 가장해 제대할 때까지 편지를 보내게 해놓은 것이다. 이 대목을 읽을 때면 그만 눈물이 절로 난다,

로맹 가리는 군대에서 전역해 어머니가 살면서 운영했던 작은 호텔에 도착해서야 어머니의 죽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지프를 세운 메르몽 호텔에는 나를 반겨줄 이가 아무도 없었다. 거기 있는 사람들은 내 어머니 이야기를 어렴풋이 들은 적은 있었으나 어머니를 알지는 못했다.” 전장에서 어머니의 편지를 받고 결국 살아서 집으로 돌아온 로맹 가리는 더 이상 어머니를 볼 수 없었다.

어머니의 무덤을 찾은 아들은 얼마나 통곡했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로맹 가리는 어머니가 죽은 이후에 받은 생전의 편지들에 대해, “탯줄은 계속 기능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로맹 가리는 어머니의 편지가 아이에게 생명의 자양분을 제공해주는 탯줄과도 같았다고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죽은 후에도 자식에게 250통의 편지를 보낸 어머니의 사랑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모성애의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

(❚최효찬 박사: 경향신문 기자 역임, 삼성경제연구소 SERI CEO에서 ‘명문가 위대한 유산’을 주제로 강의 중. 2011년 ‘한국의 저자 300인’에 선정. 저서로는 우리나라와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과 독서교육 비법을 명쾌하게 분석한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독서교육』(2010 문화체육 관광부 우수교양도서) 등 다수의 저서가 있음. 최근 『현대 명문가의 자녀교육』을 출간. http://cafe.naver.com/aplus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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