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찬 Column) 가문의 기획자가 되어라, 명재 윤증 가

최효찬

피터드러커경영센터의 진 리프먼 블루먼은 인재를 중시하는 리더십으로 ‘관계지향적 리더십’을 들고 있다. 관계지향적 리더십은 다른 사람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돕는 데 보람을 찾는다.

수백 년 내려온 명문가들의 비결을 들여다보면 관계지향적 리더십을 지닌 이른바 ‘가문 기획자’가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가문기획자는 ‘가문주식회사’의 최고경영자(CEO)라고 하겠다. 가문의 CEO가 어떠한 리더십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명문가로서의 위상과 명성이 달라질 수 있다.

논산의 명재 윤증(1629-1724) 가문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이 가문은 단순히 자녀교육에 그치지 않고 이를 체계화해 조선시대 최초의 사립학교인 종학당(宗學堂)을 만들었다. 명재 가문은 처음부터 철저하게 문중의 자제를 대상으로 교육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당시에는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의 사립학교인 종학당을 세워 후손들의 교육에 전념했다.

당시 공교육으로 서울의 성균관과 지방의 향교, 사립학교로는 서원과 서당이 있었지만 한계가 있었다. 양반가는 대부분 스승을 두고 과외를 했는데, 명재가문은 당시 사교육의 폐해를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문중 차원에서 학교를 설립해 인재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다.

종학당은 10세 아이부터 과거를 보는 청소년들까지 연령과 학문에 따라 단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말하자면 명재가문은 이미 400년 전에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원스톱’ 영재교육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이는 세계적인 명문 대학으로 유명한 하버드대학의 설립시기(1638년)와 비슷하다.

400년을 이어오는 명재 윤증 가문의 자녀교육 비결은 종학당을 세우고 자녀교육의 기틀을 마련한 ‘가문의 기획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가문 교육의 토대인 종학당을 세운 이는 명재의 백부인 동토 윤순거(1596-1668)이다.

윤순거는 먼저 학교의 교칙에 해당하는 종법(宗法)을 마련했다. 종학당은 일반서원이나 서당과는 달리 교육과정과 목표를 설정하고 철저한 규칙과 규율, 즉 종법 속에서 교육이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일용(日用, 하루에 할 일) · 야매(夜寐, 밤에 잠자는 것) · 지신(持身, 몸가짐의 방법) · 사물(四勿, 하지 말아야 할 네 가지) 등 엄격한 교칙을 학생들은 실천해야 했다. 즉 밤에는 늦게까지 공부하고 잠자리에 들 때에는 부모님께 밤새 안녕하시기를 여쭙고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요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할 뿐만 아니라 저녁에도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문안인사를 올린 다음 잠자리에 들어야 했던 것이다. 특히 공부의 근본인 독서에 대해 독서의 의의, 독서의 순서, 독서의 방법 등으로 나눠 자세하게 강조하고 있다.

독서는 예나 지금이나 공부의 기본이지만 독서에도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종학당은 1646년 설립된 이후 과거가 폐지될 때까지 46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다.

명재 가는 실용적인 가풍이 특징인데, 17세기에 이미 경영학을 가르쳤다. 종학당은 ‘이재(理財)’에 대한 과목을 개설해 토론하는 시간을 별도로 가졌다. 또 유교사회의 폐단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제사의 허례허식을 개선해 제수품의 수를 줄였다. 특히 차례 상에 송편과 전도 없이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당연히 제사상도 작은 상(68×99)으로 바꾸었는데, 이런 전통은 아직도 내려오고 있다. 예학을 중시하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조치였다. 명재가 집안의 부녀자들이 잦은 제수품 준비로 너무 혹사당한다며 간소화했다고 한다. 요즘 표현으로 당대의 학자인 명재는 시대를 한참이나 앞서간 페미니스트였던 것이다.

명재 가의 이재교육은 검소하면서도 실용적인 가풍에서 비롯한다. “남자는 오십이 되어야 비단옷을 허락하라”와 “떡쌀은 닷 되를 넘지 말며 지짐이는 세 꽂이로 하고, 유밀과는 쓰지 말라”와 같은 가훈에서 알 수 있듯이 일상생활 속에서 검소함을 앞장서 실천했다. 주목되는 것은 “만약 이같이 개혁하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집안에서 쫓아내도 좋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어린 시절을 명재 고택에서 자란 윤완식 씨는 “어릴 때 집에서 보리밥을 먹고 자랐다. 우리 집은 지금도 생일잔치를 하지 않는다”고 말다. 매년 여름방학 때면 명재의 후손들은 종학당에 모여 명재의 가르침을 받는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대상으로 한 문중교육의 전통이 수십 년째 해마다 이어지고 있다.

(❚최효찬 박사: 경향신문 기자 역임, 삼성경제연구소 SERI CEO에서 ‘명문가 위대한 유산’을 주제로 강의 중. 2011년 ‘한국의 저자 300인’에 선정. 저서로는 우리나라와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과 독서교육 비법을 명쾌하게 분석한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독서교육』(2010 문화체육 관광부 우수교양도서) 등 다수의 저서가 있음. 최근 『현대 명문가의 자녀교육』을 출간. http://cafe.naver.com/aplus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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