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람과 졸독을 피하고 다상량하라, 퇴계 가의 독서법

자녀교육 전문가 Column

최효찬

우리나라에서 학자를 연상하면 가장 먼저 퇴계가 떠오를 정도로 ‘공부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퇴계는 대학자이지만 그보다 자녀교육의 대가라고 할 정도로 자녀와 제자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 퇴계는 매일 독서를 쉬지 않았고 독서로 터득한 바를 기록한 독서록으로 《무술일과》를 저술했다. 퇴계의 학문적 성취는 독서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퇴계는 부친이 물려준 수많은 책들에 쌓여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 이식은 장인으로부터 만권의 책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퇴계의 아버지 이식은 예조정랑 김한철의 딸을 부인으로 맞았다. 김한철은 서적이 매우 많았는데 일찍 세상을 떠났다. 장모 남씨는 남편이 죽자 “어린 자식들이 서책을 가지기에는 부족하다.”고 하면서 사위인 이식에게 모두 넘겨주었다.

그러나 이식은 번번이 과거 시험에는 낙방했고, 퇴계가 태어나던 해인 1501년인 39세 때 뒤늦게 소과에 합격해 진사가 되었다. 이식은 후학을 가르칠 뜻을 세웠으나 이듬해 그만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형인 이식과 함께 공부에 힘썼던 이우는 연산군 때 과거시험(문과)에 합격해 이조좌랑과 승정원 동부승지를 지냈고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고향에 돌아왔다. 3년 후인 1515년에 안동 부사로 나갔으나 2년 후 1517년 49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우가 바로 퇴계에게 논어를 가르친 스승이었다.

이황 가에는 5백 년 동안 대대로 이어져온 필독서가 있는데 바로 《심경》이다. 퇴계는 23세, 33살에 고향인 안동을 떠나 한양의 성균관에 두 번 유학했다. 23세 때 유학할 때 황모라는 학생에게 남송의 진덕수가 편찬한 《심경》을 빌려 처음 읽었다. 이때 그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뒷날 퇴계는 “내가 《심경》을 얻어 보고 나서 비로소 심학의 근원과 심법의 정밀함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평생에 이 책을 신명처럼 믿었고 이 책을 엄한 아버지처럼 공경했다.”고 말했다. 퇴계는 《심경부주》에서 논란이 되는 부분을 연구해 ‘심경후론’이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공부는 마음공부가 어쩌면 더 중요하다. 독서는 바로 수신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으면 조숙해지고 세상을 보는 눈이 트이게 된다. 퇴계는 《심경》을 마음의 수양을 위한 학문(심학)과 마음의 수양을 위한 방법(심법)의 체계로서 처음 학문에 들어가는 사람에게 매우 절실한 것임을 강조했다.

퇴계의 애독서였던 《심경부주》를 퇴계의 직계 후손인 이치억 씨(성균관대 박사)가 대중을 상대로 강의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가이자 조선 최고의 학자인 퇴계 이황 가에는 5백 년 동안 대대로 이어져온 필독서가 바로 《심경》이었다.

삼다란 말이 있다.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 그것이다. 이는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해야 한다는 뜻인데, 당송팔대가 중 한 사람인 송나라의 구양수가 글을 잘 쓰는 비법이라고 한 말이다. 퇴계는 12살 때 스승인 작은아버지에게 구양수의 독서 습관인 ‘삼다’에 대해 듣고, 이를 곧바로 실천했다.

퇴계는 책을 많이 읽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퇴계는 다만 책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퇴계는 글을 읽으면서 중요한 문구를 필사했고, 이것이 축적되어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주희의 《주자대전》을 읽으면서 펴낸 《주자서절요》이다.

또 퇴계는 졸독을 경계하라고 조언한다. 졸독(卒讀)이란 매우 급작스럽게 급히 읽어버리는 독서법이다. 이는 시간만 낭비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요약된 책 읽기를 경계했다. 중국 각 시대의 정사로 꼽히는 18가지 역사서를 일목요연하게 집대성한 증선지의 《십팔사략》과 또 고시와 고문을 간단하게 뽑아 엮은 《고문진보》와 같이 요약본을 읽지 말라고 손자에게 조언하기도 했다.

퇴계의 독서법에서 볼 수 있듯이 무엇이든 결코 도약이란 없다. 독서 또한 마치 한 땀 한 땀 옷을 짜듯이 한 문장 한 문장 읽고 또 적다보면 마음에 젖어드는 것이다. 퇴계의 학문은 이런 과정을 한 단계 한 단계 거치면서 비로소 무르익어 조선 최고의 대학자로 성장한 것이다.

(❚최효찬 박사: 경향신문 기자 역임, 삼성경제연구소 SERI CEO에서 ‘명문가 위대한 유산’을 주제로 강의 중. 2011년 ‘한국의 저자 300인’에 선정. 저서로는 우리나라와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과 독서교육 비법을 명쾌하게 분석한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독서교육』(2010 문화체육 관광부 우수교양도서) 등 다수의 저서가 있음. 최근 『현대 명문가의 자녀교육』을 출간. http://cafe.naver.com/aplus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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