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오구스켄트에서 카나타로

정태인 주 토론토 총영사

중앙아시아의 한 구석, 카라쿰 사막 가장자리, 코페닥 산 밑자락에 위치한 오구스켄트(투르크메니스탄 수도 ‘아시가바트’의 옛 이름)에서 3년을 지냈다. 투르크어로 ‘켄트 또는 칸트’가 마을을 의미하니, ‘오구스켄트’는 투르크계의 종가집인 ‘오구스족의 마을’이란 뜻이다. 그곳에서 경주 김씨 홍보를 열심히 했다.

투르크계 왕자가 한나라에 볼모로 끌려가 지내면서 김(金)씨 성을 얻었다. 현재도 그렇지만 옛날부터 투르크계 민족들이 ‘알탄(金)’을 좋아해서 성이 김씨가 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그 후손들이 신라로 가서 김씨 왕조를 열었다. 수도인 경주를 금성(金城), 즉 ‘김씨 마을’이라고 불렀다. 투르크어로는 ‘알탄 칸트’가 된다. 신라가 망한 후 그 후손들이 다시 만주로 가서 금(金)나라를 세우고, 황제를 ‘알탄 칸’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여간 오구스켄트와 알탄칸트(金城)는 형제도시라고 떠들고 다녔다.

오구스켄트를 떠나 카나타(캐나다의 어원) 토론토로 온 지 1년이 지나간다. 토론토의 의미가 ‘만남의 장소’라고 해서 열심히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그런데 지구의 정 반대편으로 근무지를 옮겼으나, 다시 제 자리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카나타의 뜻이 마을이라고 한다. ‘칸트’와 ‘카나타’, 소리가 비슷하고 뜻이 같다. 북미 대륙 원주민이 과거 유라시아 초원을 떠돌다가 베링해를 건너왔다고 하니, 중앙아시아가 북미 대륙이 연결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북미 원주민 마을 입구에 동물을 조각한 솟대를 보면서 한국의 장승을 연상하기도 한다.

카나타는 다민족ㆍ다문화 국가이다. 유라시아 출신 원주민들은 오래전에 정착했다. 유럽계 이주민들이 도착하고, 뒤를 이어 중국계, 인도계, 이란계 등 다양한 아시아 민족들의 이주가 점증하고 있다. 20만이 넘는 이란계 사람들을 만나면, 페르시아 왕자와 신라 공주의 사랑 이야기를 해준다.

경주 김씨의 뿌리가 중앙아시아이고, 이란계가 10세기 이전에는 중앙아시아까지 진출하였으니, 상호 교류의 개연성이 있다. 100만이 넘는 인도계 사람들을 만날 때는 아요디아 공주의 가야 김수로왕과 결혼 이야기를 해준다.

인도인들은 7세기까지 지배한 동남아 바다를 따라 한반도 남해안에 와서 김해 허(許)씨 일가를 이루었다. 일본계 이주민에게는 단군 신화에 나오는 웅녀(熊女) 이야기를 해준다. 만주를 거쳐 한반도를 지나 해류를 따라 큐슈 구마모토(熊本)까지 곰의 자손들이 갔으니, 인연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수천년 동안 한반도는 중국 대륙과 여러 형태로 교류를 했으니, 중국계 인사들과도 할 이야기가 많다. 이런저런 인연들이 카나타에서 다시 연결되고 있다.

작년 10월 토론토에서 한국주간 행사를 개최했다. 안재훈 감독의 애니메이션 작품 상영이 있었다. 한국 전래동화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작품 모음이었다. 갑작스런 제안을 했다. 카나타가 다민족·다문화 사회이고 토론토가 카나타의 중심지이니 토론토에서 애니메이션 사업을 해보면 어떠냐고.

최근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에 대한 언론기사가 떠올랐다. 헐리우드 등에서 발주한 작품을 제작하는 사업이 활기를 띠고 있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하면서, 새로운 움직임이 있다는 기사였다.

카나타에는 전세계 다양한 문화권의 스토리가 있다. 헐리우드가 “신바드”, “뮬란” 등으로 세계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민족·다문화 사회의 중심지인 토론토를 애니메이션 허브로 만드는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민족·다문화에 기반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한 토론토에서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 주도로.

지금 세계는 4차 산업혁명을 선점코자 경쟁하고 있다. AI 연구가 활발하다. 그러나 결국은 컨텐츠 산업이 핵심이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 인간이 할 일이 급감한다. AI와 경쟁에서 인간이 우월적 위치에 있는 분야는 컨텐츠 산업이다. 생산 활동은 AI가 담당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소비 활동이 생산이 되는 산업이 유망한 분야이다.

2천년 전 로마제국을 돌이켜 본다. 생산은 노예가 담당하고, 국방은 용병이 담당했다. 로마시민들은 풍요 속에서 즐기는 일만 했다. 그래서 검투사들의 살인게임에 탐닉한 것 같다. 노예와 용병이 AI와 로봇으로 대체되는 4차 산업혁명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무한한 생산력을 과시하는 공급 경제에서 이에 상응하는 수요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적절한 소득분배 구조가 필요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소비산업 육성이 필요하다. 다민족·다문화 사회인 카나타의 중심지에서, 글로벌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미래를 개척하는 시도를 시작해보면 어떨까. (기사출처: 내일신문, 정보제공: 토론토 김정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