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거나 사랑하거나 …

연말연시에는 모임이 많다. 그런 자리에서는 과음을 하기도 하는데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다짐한다. 절대로 이렇게 마시지 않겠다고… 하지만 몇 일후 똑같은 후회를 하기 일쑤다. 결국 생각뿐이고 달라진 일상은 없다. 물론 반성조차 없는 사람에 비하면 그나마 낳다고 할 수 있으나 ‘달라짐’이 없다면 문제를 아는 것이나 모르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쉰 살까지 나는 정말 한 마리 개와 같았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어대면 나도 따라 짖어댔을 뿐, 왜 그렇게 짖어댔는지 까닭을 묻는다면, 그저 웃을 뿐이었다.”중국 양명학의 대가인 탁오이지의 말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숫자 이상의 의미가 있다. 경험을 반복하면서 같은 실수를 줄여가며 어제의 자신과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난 원래 그렇다’며 달라지지 않거나 자기를 버리고 남들 흉내만 내려고 한다면 건강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려서 잘못을 하면 치기로 여기지만, 같은 잘못도 나이를 먹으면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나이는 어깨에 올려진 훈장이자 짐이다.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에 뭐가 묻어있다면 얼굴을 닦아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거울을 닦고 있다면… 우리 삶에 거울 역할을 하는 것은 타인이고 세상이다. 습관적으로 남을 탓하고 세상을 문제삼아서는 진정한 자기를 만날 수 없다.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불필요한 열등감을 느낀다. 우월감 또한 타인을 열등한 존재로 보았을 때 느끼는 감정이기에 건강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결정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거짓된 자기로 산다. 거짓이란 있는 것을 없다고, 없는 것을 있다고도 하지만 있는 것 그 이상으로 허세를 부리거나 없는 것 그 이하로 위축되는 것이다.

“성찰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던 소크라테스의 가르침대로 살기 어렵다면 부화뇌동하지 말고 니체의 아모르파티 (라틴어로 ‘사랑’을 뜻하는 Amor와 ‘운명’을 뜻하는 Fati의 합성어)처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며 사는 것은 어떨까!

(❚강래경: Wecan Talent Management 대표, 고려대-이화여대 평생교육원 코칭강사)

그냥 그런 하루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