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이겨내려면 시험을 통과하라, 증국번 가

최효찬

동서고금의 가문을 연구하다보면 각 시기나 나라마다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미국의 케네디 가, 영국의 처칠 가, 인도의 네루 가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가문이 공과를 떠나 통과의례처럼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그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지금도 끼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의 명문가를 연구하다보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있었다. 청나라 말기의 증국번(曾國藩, 1811~11872)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태평천국의 난을 평정한 청나라의 마지막 충신이자 경세가이며, 문장가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그는 복고적이지 않았고 서양문물을 도입해 부국강병을 이루려던 양무운동의 초기 추진자이기도 했다. 특히 최초로 유학생을 미국에 파견했고 서양기술을 도입한 최초의 무기 공장을 설립하기도 했다.

증국번 가는 호남성 상항현에 명나라 때부터 수백 년간 살았지만 오로지 농업에만 종사하였고, 학문이나 과거로 이름을 남긴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증국번의 할아버지(증옥병)는 건달이었고 그 아들 증린서에 이르러서야 과거시험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그 계기를 만든 것은 증린서의 아버지 증옥병의 깨달음이었다.

청년 건달 증옥병은 제 손으로 농사를 지어 집안에 보탬이 된 적이 없었다. 35살 때 증옥병은 “아직도 건달생활을 하느냐?”는 마을 사람들의 비아냥거림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날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 같았다. 이런 아버지에게 유일한 낙은 아들 린서였다. 효성이 지극한 린서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고 일찌감치 과거시험 공부에 열심이었다.

그러나 이 소년도 동생시(童生試)에서 매번 낙방하고 말았다. 동생시는 과거 예비 시험으로 현시·부시·원시가 있는데, 이를 모두 통과하면 생원이 된다. 생원이 되어야 비로소 과거를 볼 자격이 주어지고 이를 통과해야 진사가 된다. 증린서는 17번이나 동생시를 치러 43살이 되어서야 겨우 합격했다. 증국번은 아버지가 동생시에 합격한 1년 후에 합격을 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었다.

시험 준비 과정은 혹독했다. 증국번은 다섯 살 때부터 아버지 증린서의 지도를 받으며 공부를 시작했다. 증린서는 집에 연 서당을 열어 학동 10여 명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아들을 엄하게 키우기 위해 일곱 살 난 국번을 자신의 가숙(家塾)에 입학시켰다. 수업은 아침부터 저녁까지이고 수업 내용은 사서오경의 독해가 중심이었다. 아버지 린서의 가숙에 들어간 후로 국번은 자다가도 아버지의 닦달 때문에 잠에서 깨어야 할 때가 많았다.

증국번을 키운 것은 열정적인 독서였다. 한번은 증국번이 서점에서 3,000권정도 수백 책으로 구성된 이십삼사(二十三史)를 발견했다. 이십삼사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와 그 후의 각 시대의 정사를 모아 놓은 것이다.

증국번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을 바라보는 듯 하염없이 그 책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래, 당분간 입지 않을 옷가지를 전당포에 맡기면 될지도 몰라.” 돈이 없던 증국번은 지인에게 돈을 꾸고 또 어머니가 지어준 옷가지들을 전당포에 모두 맡기고 그 책을 살 수 있었다. 증국번이 고향에 돌아왔을 때, 그의 짐은 모두 책이었다. “지인에게 백 금을 빌리고 또 옷가지를 전당포에 맡기고 책을 사는 데 다 쓰고 말았습니다.“

국번은 주저하면서 말했다. “그럼 내가 너를 대신해서 빚을 갚도록 하지.” 증국번은 자신의 처지에 맞지 않게 너무 사치스런 책을 샀다고 아버지가 야단을 치면 어쩌나 조바심을 했는데, 아버지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책을 사기 위해서라면 빚을 내도 좋고 물건을 전당포에 맡겨도 좋다.” 증린서의 이 말이야말로 아버지가 자녀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훈계가 아닐까 싶다. 이럴 경우 자녀를 타박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과거시험을 위해 상경해야 하는데 돈이 없었다. 친구들이 조금씩 갹출해 건네주었다. 증국번은 “이런 궁핍에서 벗어나려면 무조건 급제하는 수밖에 벗다”고 다짐했다. 증국번은 회시, 공시, 복시 1등을 거쳐 전시에 합격해 한림원 서길사(학문을 갈고 닦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관직)에 임명되었다. 그때가 1838년으로 27살 때이다.

한 인간이 세상에서 쓸모 있는 인재가 되기 위해서는 예나지금이나 시험이라는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것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건너야 하는 수많은 사다리 중에서 처음으로 건너야 하는 과정이고 그 과정을 넘긴 자에게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최효찬 박사: 경향신문 기자 역임, 삼성경제연구소 SERI CEO에서 ‘명문가 위대한 유산’을 주제로 강의 중. 2011년 ‘한국의 저자 300인’에 선정. 저서로는 우리나라와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과 독서교육 비법을 명쾌하게 분석한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독서교육』(2010 문화체육 관광부 우수교양도서) 등 다수의 저서가 있음. 최근 『현대 명문가의 자녀교육』을 출간. http://cafe.naver.com/aplus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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