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역사에서 Sixties Scoop

“Sixties Scoop”는 1960년대를 전후하여 인디지너스 아이들을 태어난 가정, 커뮤니티 그리고 가족으로부터 대규모로 분리 또는 “scooping”하여 미국이나 캐나다의 비-인디지너스 중산층 가정으로 것으로 입양시킨 것을 말한다. 이로 인해, 많은 입양아들은 문화적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가족과의 물리적 그리고 정신적 분리는 오늘날 인디지너스 커뮤니티와 강제로 입양을 당한 개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인디지너스 아이들의 “Scooping”, 1951–80s

Canadian Council on Social Development의 Patrick Johnston 연구원이 Native Children and the Child Welfare System라는 제목의 인디지너스 아동 복지 제도에 대한 보고서에서 “Sixties Scoop”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보고서에서, Johnston은 1960년대를 전후하여 인디지너스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부모, 커뮤니티 그리고 밴드의 동의없이 미국과 캐나다의 인디지너스가 아닌 중산층 가정으로 대거 입양시킨 것이라는 설명을 하고 있다. Sixties Scoop는 열악한 환경에 처한 인디니너스 아이들을 키우자는 것이 아니라, 인디지너스 문화와 공동체를 동화시키기 위해 캐나다 정부에 의해 의도적으로 실시된 것이라는 설명을 하고 있다.

1952년 Indian Act 제정에 따라 인디지너스 어린이 복지는 연방정부가 아닌, 주정부가 담당해야 했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기숙학교, Indian Act 그리고 리저브 거주와 같은 연방정부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인디지너스 커뮤니티는 빈곤, 높은 사망률 그리고 사회 경제적으로 고립되었다.

1951년 Indian Act 가 본격적으로 실시되면서 연방정부로부터 추가적인 재정지원이 없었기 때문에, 주정부의 아동복지 기관들은 인디지너스 커뮤니티의 아동 복지와 관련하여 많은 문제를 갖고 있었다. 주정부의 아동 복지기관들은 서비스와 자원이 부족한 인디지너스 커뮤니티에 지원을 확대하기 보다는 아이들을 가정과 분리하기로 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주정부들은 인디지너스 아이들을 가족과 분리하는 것이 인디지너스 아이들의 복지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이라는 생각을 했다. 많은 경우에, 아동 복지 시스템은 인디지너스 아동복지에 대해 교육을 받았거나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소셜 워크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들은 신생아 또는 어린 아이들을 부모나 태어난 지역에서 비-인디지너스 가정으로 배치하는 것에 대해 지역 사회의 동의를 구할 필요가 없었다.

1980년대에 Child, Family and Community Services Act가 제정되기 이전까지 소셜 워커들은 커뮤니티에서 아이들을 데려가는 것을 보고할 필요가 없었다.

영향을 받은 어린이의 숫자

Sixties Scoop는 1960년대에 급격하게 확산되었다. 이 시기는 인디지너스 아이들이 아동복지 시스템 속에서 특별히 많았던 시기였다. 예를 들면, 1964년에 브리티시 콜롬비아에서 주정부 보육원에 있었던 어린이 숫자는 1,466명이었다. 이는 1951년의 29명이 비해 50배나 많은 숫자였다. 정부로부터 보호 서비스를 받는 어린이 중에서 인디지너스 어린이가 1951년에 1퍼센트였지만, 1960년대 후반에는 3분의 1에 달했다.

가족들로부터 분리된 아이들의 숫자는 주별로 달랐지만, 프레리 지역에서 가장 만연했다. 사스캐치완에서는 입양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었다. 매니토바에서는 1971년부터 1981년 사이에 약 3,400명의 인디지너스 어린이가 입양되었으며, 비-인디지너스 가정의 80 퍼센트가 입양을 하였다.

Indigenous and Northern Affairs Canada는 1960년부터 1990년 사이에 입양된 인디지너스 어린이 숫자를 11,132명에 이른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퍼스트 네이션, 메니티 그리고 이뉴잇에서 20,000명의 어린이들이 가족들로부터 강제로 분리된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과 강제로 분리된 많은 어린이들이 해외로도 보내 졌으며, 일부는 멀리 뉴질랜드까지 이동되었다. 어떤 자료에서는 1981년에만 45 퍼센트에서 55 퍼센트의 어린이가 미국인 가정에 입양되었다고 했다.

아동 복지 정책의 변화, 1980년대 – 현재

Johnston 보고서의 영향으로 Sixties Scoop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매니토바 법원 Edwin Kimelman 판사의 No Quiet Place (1985)를 비롯한 주정부들 차원에서도 많은 법개정이 이루어졌다. 특히, 인디지너스 아이들이 비-인디지너스 가정으로 입양되기 전에 확대가족 그리고 다른 인디지너스 커뮤니티에 입양의 우선권이 주어졌다.

연방정부가 First Nations Child and Family Services program (FNCFS) 법을 제정한 1990년대에는 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역의 밴드는 주 그리고 준주 법에 따라 아동과 가족 서비스를 관리할 권한을 이양 받았다. 그 이후로, 밴드는 자신들의 영역에 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아동 복지 서비스를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동복지 시스템 속에서 인디지너스 어린이들이 너무 많은 것은 여전히 문제이다. 2015년 Aboriginal Children in Care Working Group은 Report to Canada’s Premiers라는 보고서에서 캐나다 전역의 보호시설에 인디지너스 어린이 숫자가 많은 것이 문제라는 것을 강조했다. 예를 들면, 알버타에서는 주정부 보호소에 있는 어린이 중에서 69 퍼센트가 인디지너스라고 했다. 알버타에서 어린이 숫자는 전체 인구의 9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뉴 브런즈윅과 노바 스코시아에서는 인디지너스 어린이의 23 퍼센트가 복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들 지역에서 어린이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3 퍼센트와 6 퍼센트에 불과하다.

사회-문화적인 영향

성인이 된 Sixties Scoop의 입양아들은 문화적 정체성 상실에서 오는 낮은 자부심, 수치심, 외로움 그리고 혼란에 이르기까지 악영향이 지속되고 있다. 자녀와 부모가 함께 동의하지 않으면 출생기록을 공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많은 입양자들은 인생의 후반기에 자신에 대해 알게 되면서 좌절과 정서적 고통을 겪었다. 일부의 입양자들은 사랑과 지원이 충분한 가정에 보내어 지기는 했지만, 가정에서 건강한 인디지너스 정체성 형성에 필요한 문화와 특별한 경험을 제공할 수는 없었다. 일부의 입양인들은 성적, 육체적 그리고 기타의 형태로 학대를 당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런 다양한 경험과 감정이 입양자들의 건강과 삶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러한 결과로, 1990년대 초반부터 온타리오, 알버타, 사스캐치완 그리고 매니토바에서 주정부를 상대로 집단소송이 제기되었으며, 여전히 법원에 계류 중이다.

최근의 진행 방향

2015년 6월 18일 매니토바 주정부는 Sixties Scoop에 대해 사과를 표현하고, 내용을 교과과정에 포함시킬 것이라고 했다. 이 사과는 퍼스트 네이션 기숙학교와 관련하여 발표했던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of Canada(TRC)가 제시한 “Calls to Action”과 일치하는 내용이었다 .

TRC는 Sixties Scoop를 캐나다 정부가 인디지너스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문화적 대량학살”의 한 부분이라고 했었다.

2017년 2월 1일, 캐나다 정부는 2009년에 제기된 1.3 빌리언 달러의 집단소송에 합의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발표를 했었다. 2월 14일 Ontario Superior Court의 Edward Belobaba 판사는 연방정부가 강제로 입양된 아이들이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Sixties Scoop 희생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것은 캐나다에서 Sixties Scoop의 첫번째 승소이다. 연방정부는 2017년 10월 6일 Sixties Scoop 생존자들에게 800 밀리언 달러의 합의금을 지불한다고 발표했다. (Sta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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