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Column] 2018년에 맞게 살고 있는가?

강래경

남북의 정상이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은 물론 우리 대통령이 북한 주민 15만명 앞에서 연설을 하는 장면은 감격적이었지만 도무지 실감은 나지 않는다. 핵으로 인한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불과 1년전만 해도 트럼프 트윗 하나하나에 신경쓰며 전쟁을 걱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5천년을 함께 살았고 70년을 헤어져 살았다”는 말대로라면 대립은 70분의 1에 불과하지만 내가 살아온 전부의 시간이다. 그러다보니 통일은 노래로만 불렀던 우리의 소원이었고 지금의 화해가 감동적이면서도 앞으로 잘 될 지가 미심쩍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북한이 전쟁의 가해자였기 때문에 그 시절의 아픔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냉전논리를 이용한 세력들이 빨갱이라며 적개심을 주입시켜 왔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야말로 평화와 반공이 공존하는 것이다.

마치 비동시성의 동시성 (the contemporaneity of the uncontemporary)을 보는 듯하다.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가 1930년대 독일 사회를 규정하면서 사용한 말인데, 고도로 발전한 지역 안에서도 치외법권 지역처럼 낙후된 지역이 공존할 수 있고, 어울리지 않는 두 시대의 양상이 같은 시대에 공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즉 글로벌 기업 삼성이 전근대적인 세습으로 경영권을 유지하려는 것도 아이러니하지만 현실이고, 미투운동으로 드러난 유명인들의 실체나 재벌들의 경영방식은 지금의 대한민국과는 어울리지 않는 봉건적인 모습이다.

유명인들만이 아니다. 입으로는 공정한 사회를 외치면서 자기 문제에 있어선 학연, 지연, 혈연 같은 비합리적인 요인에라도 기대고 싶어 한다. 부동산 투기를 욕하면서도 내 집값은 올라야 하고 이를 위해 가격담합까지 한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면서도 돈을 위해서 선의의 사회적 경쟁력을 다 갉아먹고 있다.

우리는 외형적으로만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존재하고 있을 뿐, 생각과 느낌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우리의 시계를 2018년에 맞추고, 지금의 시대정신에 맞게 살아 갑시다.

(❚ 강래경 대표: WeCan Talent Management, 고려대-이화여대 평생교육원 코칭 강사)

September: 예민한 토끼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