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Column] 젊은 날 여행은 미래의 자산이다, 사마천 가

최효찬

중국 역사서의 전범이 된 『사기』를 저술한 사마천은 48살에 흉노족에 포로로 잡힌 이릉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황제(한 무제)의 노여움을 사 궁형을 당했다. 궁형은 남자의 성기를 자르는 것으로 고대 중국에서는 가장 치욕스런 형벌이었다. 궁형을 당하면 수치심에 못 이겨 자살하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사마천은 살아남았다. 그것은 아버지 사마담이 쓰다 남은 ‘사기’를 저술하라는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서였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수많은 성현들도 자신처럼 억울함을 당했고 현실에서 못다 이룬 포부를 저술을 통해 이루고자 한 것이다. 이를 사마천은 발분저서(發憤著書)라고 했다. ‘발분저서’란 어떤 사람이 곤경이나 가난에 처할 때 도리어 이러한 한스러운 상황이 그 사람을 분발하게 하고 걸작을 만든다는 말이다. 사마담은 아들에게 이렇게 유언을 했다.

“공자 이후 4백여 년의 혼란기를 거치며 기록다운 기록이 끊겨 버렸다. 이제 우리 한나라가 다시 천하를 통일하고 전성기로 접어들었는데, 이렇게 의미 있는 시절에 훌륭한 군왕과 충신 그리고 열사와 의은들을 내가 태사령으로서 기록하지 못하고 죽게 되어 무척 괴롭다. 너는 반드시 기록하도록 하여라.”

아버지의 유언을 들은 지 3년째 되던 기원전 108년인 38세 때 사마천은 태사령직을 승계한다. 이때부터 사마천은 국가 도서관의 각종 서적 및 파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유고를 기초로 『사기』 저술에 착수한 것이다. 사마천은 18년 동안 저술에 힘써 결국 『사기』를 기원전 90년에 완성했다.

사마담은 천문과 역법, 주역, 도가 사상 등을 당대 최고 학자로부터 전수받아 상당히 박식했다. 사마담의 논문인 ‘육가요지’는 전국시대 6대 사상, 즉 유가 묵가 명가 법가 도가 음양가의 특징과 장단점을 간명하게 정리해 놓은 대단히 식견 높은 내용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의 학문을 전수했고 『사기』의 끝부분인 ‘태사공자서’에는 사마천이 아버지 사마담의 학식을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다. 육가, 즉 유가․ 묵가․ 도가․ 법가․ 음양가․ 명가(名家)의 학문 요지를 시마담이 논하는 형식으로 기록해 놓았다. 말하자면 ‘태사공자서’는 아들이 받치는 아버지 역사철학의 핵심인 셈이다. 이 때문에 ‘태사공자서’는 『사기』를 이해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부분으로 평가된다.

사마천은 20세에 중국 전역을 여행했는데 이게 훗날 그가 『사기』를 저술하는데 산지식을 제공하게 된다. 장기간에 걸쳐 그 당시 한 제국의 세력권이 미치는 전 지역을 답사하듯 여행했다. 진 제국이 무너지고 항우와 유방이 패권을 다툴 당시 군웅들의 주요 활동 무대였던 설현 및 팽성 부근을 답사할 때는 고생을 하기도 했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황제의 비서관인 낭중이 된 시기가 27세 전후이므로 사마천이 여행한 기간은 최소한 1~2년, 길면 2~3년은 소요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 비용은 아버지 사마담이 부담했다. 그렇다면 장거리 여행은 아버지 사마담이 의도적으로 보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사마담은 아들에게 훗날 어떤 중차대한 임무를 부여하기 위해 미리 견문을 넓히도록 여행을 지원한 것이 아닐까 싶다. 사마천은 아버지의 배려로 중국판 문화유산 답사를 체험하면서 미리 답사기를 써 놓았던 것이다. 이게 『사기』를 저술할 때 기초자료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사마천의 『사기』는 여행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사마천이 20대 시절 행한 이 여행은 마치 영국의 자연주의 시인인 윌리엄 워즈워스에게 ‘시간의 점’이 된 알프스 여행과 닮아 있다. 워즈워스는 스무 살에 알프스 여행을 할 때 보았던 거대한 자연의 한 풍경이 평생 머릿속에 남아 시인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곤 했다면서 이렇게 기억에 떠오를 때마다 가슴속에 파고들어 힘을 주는 자연 속의 한 장면을 ‘시간의 점’이라고 불렀다.

오랜 기간에 걸쳐 당시 한 제국의 세력권이 미치는 전 지역을 답사하듯 여행했는데 이 여행은 또한 스티브 잡스가 말한, 미래에 의미가 되어주는 일인 ‘점’의 연결하기(Connecting the dots)와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훗날 사마천이 ‘사기’를 기록하는데 살아 있는 지식들을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다. 사마천의 사례를 통해 젊은 날 여행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볼 수 있다.

(❚최효찬 박사: 경향신문 기자 역임, 삼성경제연구소 SERI CEO에서 ‘명문가 위대한 유산’을 주제로 강의 중. 2011년 ‘한국의 저자 300인’에 선정. 저서로는 우리나라와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과 독서교육 비법을 명쾌하게 분석한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독서교육』(2010 문화체육 관광부 우수교양도서) 등 다수의 저서가 있음. 최근 『현대 명문가의 자녀교육』을 출간. http://cafe.naver.com/aplus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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