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전 이민을 올 당시와 같은 봉제공으로 일하는 필리피노

Danny Selvilla씨는 봉제공장 근로자로 선발되어 1968년 필리핀에서 위니펙으로 온 114명 중에 한명이라고 프리 프레스가 보도했다.

현재 Mountain Ave.에 있는 Canada Goose 공장에서 일하는 Selvilla씨는 위니펙의 여러 봉제공장에서 일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1968-69년 사이에 필리핀에서 봉제공으로 위니펙에 온 450명 중에서 Sevilla씨는 동일 업계에서 일하는 마지막 사람이다.

9월 8일에는 당시에 온 사람들과 친목을 다지기 위해 Polo Park Canad Inn에서 “Philippino Garment Workers 50주년” 행사가 열렸다. Selvilla씨는 이날 행사에 300명이 몰렸으며, 35달러 티켓이 매진되었다고 했다.

반세기전에 그들이 캐나다 올 때, 필리피노 봉제공장 노동자들은 Manitoba Textiles Association을 대신하여 캐나다연방정부의 Commerce and Industry Department에 의해 채용된 후에 항공권과 현금 125 달러를 받고 위니펙으로 왔다.

Selvilla씨는 위니펙에 왔을 때 시간당 급여로 1.20 달러를 받았지만, 필리핀에 비하면 엄청난 것으로 느꼈다고 했다. 그는 Canadian Shirt & Overall 재단실에서 일을 시작했었다.

Selvilla씨는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은 없다고 하면서, “우리는 많은 돈을 받지 못했다. 우리는 개수로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일을 처리하는 속도가 빨라야 했었다. 만약에 일하는 속도가 느리면, 최저임금만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동료 대부분은 더 많은 임금을 주는 곳을 일자리를 옮겼다고 했다.

그는 “일부는 직업을 바꾸었다. 일부는 보잉으로, 일부는 다른 종류의 기술직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했다. 필리피노 봉제공장 근로자 채용은 계속되어 1972년까지 총 1,211명이 위니펙에 도착했다.

Selvilla씨는 그후 수십년 동안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영향으로 인해, 위니펙에 있었던 대부분의 봉제공장은 방글라데시아 같은 곳으로 이전을 했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Canada Goose와 같은 회사가 되살아 나면서 Selvilla씨와 같은 ‘재단사’가 해야 할 일도 늘어났다. 그는 유명한 사람들이 본인이 재단한 Canada Goose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보면, 자랑스럽다고 했다.

올해로 71세인 Selvilla씨는 “은퇴나 일을 줄이는 것과 같은 계획은 없다.”고 하면서, “나는 숨을 쉴 수 있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할 것이다.”고 했다. (Sta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