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연주여행으로 천재성을 이끈 아버지, 모차르트 가

천재는 요절한다고 했던가! 35살의 짧은 생애를 살다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가 남긴 작품은 모두 600여곡에 이른다.

교향곡과 함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돈 지오반니 등 그가 남긴 불후의 작품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가 음악천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그의 천부적인 재능도 있었지만 같은 음악가였던 아버지의 조기교육이 덕분이었다.

모차르트에게는 아버지를 떼어놓고 그의 음악적 성공을 말할 수 없다. 모차르트를 음악신동으로 만든 것은 먼저 잘츠부르크 궁정음악가였던 아버지의 조기음악교육을 꼽을 수 있다. 모차르트가 3세 때 누나 마리아 안나(난네를)가 클라비어를 배우고 있는데, 모차르트는 그 옆에서 가만히 그것을 듣고 있었다. 누나의 레슨이 끝나자 클라비어 앞에 앉더니 누나가 배운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누나보다 더 잘 연주했다. 이게 바로 모차르트의 천재 탄생을 알리는 서곡이었다. 모차르트는 네 살 때부터 음악공부를 시작했고 다섯 살 때부터 작곡을 했다.

모차르트를 음악의 길로 이끈 것은 그의 천재성을 간파한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였다. 레오폴트는 아들 모차르트와 딸 마리아 안나(1751~1829)의 음악적 재능을 일찍 간파하고 다양한 악기를 조기 교육했던 ‘열정 아빠’이었던 것이다. 급기야 레오폴트는 아들 모차르트의 여섯 살 생일을 앞둔 1762년 1월 7일을 시작으로 자식들의 재능을 널리 알리기 위한 연주여행을 떠났다.

당시 유럽은 7년전쟁(식민지를 둘러싼 영국과 프랑스간의 전쟁)이 막 끝난 혼란스러운 시대여서 유럽 전역을 여행하려면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런 와중에서 모차르트 가족은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연주를 했다.

6살 때 뮌헨으로 시작된 연주여행은 런던과 파리, 스위스 등을 거쳐 10살 때까지 3년6개월 여행을 다녔다. 14살 때에는 이탈리아 여행에 올랐고 이듬해 두 번째 여행을 했다. 모차르트는 “아빠는 정말 완벽한 여행 안내자에다가 위대한 스승이세요.”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아들 볼프강의 연주여행의 모든 것을 총괄했고 심지어 연주회의 성공을 위해 힘들고 궂은일을 도맡았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명성은 아버지가 기획하고 전 가족이 함께 한 연주여행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입장권을 직접 사교계 부인에게 팔며 연주회의 성공을 이끌었다. 모차르트 가족의 연주회는 아버지의 마케팅에 힘입어 이내 유럽 사교계에 퍼지기 시작했고 귀족들은 너나없이 경쟁하듯 볼프강을 만찬이나 아침식사에 초대했다. 여기저기서 초대를 받아 연주를 계속했다.

아버지 레오폴트는 연주회 티켓을 팔고 빈과 또 다른 독일의 신문에 연주회에 대한 소식을 알렸다. 공연이 있기 전에는 연주회를 알리는 광고 기사를 내곤 했다. ‘어린 소년이 콘서트를 합니다. 바이올린과 그랜드 피아노 연주뿐 아니라 원하신다면 파이프오르간 연주도 들려드립니다. 어떤 어려운 노래라도 멋지게 연주해 드립니다.’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아들 볼프강을 음악신동으로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다름 아닌 유년시절의 연주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여행 도중 독일에서 괴테를 만나기도 했다.

부자관계에서 아버지는 ‘영원히 손해 보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버지의 헌신은 언제나 헌신이 동반되는 것이며 이를 흔히 ‘내리사랑’이라고도 한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그 반대의 사랑은 성립하지 않는다.

모차르트 부자는 아버지 레오폴트의 헌신, 즉 자신의 음악인생을 포기하면서 끝없는 내리사랑으로 모차르트를 음악신동에서 나아가 위대한 음악가의 길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이다. 연주여행을 주도한 아버지가 없었다면 모차르트의 존재는 오늘날과 다른 모습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버지 레오폴트는 혹독한 추위와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모차르트와 함께 연주여행을 하면서 아들을 천재 음악가로 만들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법률과 질서, 훈련, 여행과 모험 등의 세계를 대표하고 있다. 아버지는 어린애를 가르치는 사람이고 어린애에게 세계로 들어서는 길을 지시해주는 사람이다.” 모차르트의 생애에서 보듯이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에서 말한 이 문장이야말로 한 사람의 성장과정에서 아버지의 존재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최효찬 박사: 경향신문 기자 역임, 삼성경제연구소 SERI CEO에서 ‘명문가 위대한 유산’을 주제로 강의 중. 2011년 ‘한국의 저자 300인’에 선정. 저서로는 우리나라와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과 독서교육 비법을 명쾌하게 분석한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독서교육』(2010 문화체육 관광부 우수교양도서) 등 다수의 저서가 있음. 최근 『현대 명문가의 자녀교육』을 출간. http://cafe.naver.com/aplus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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