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무조건적인 믿음이 큰 인물을 만든다, 최인호 가

“이 자식아, 이 성적으로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못 간다구. 이 자식아, 너 이 다음에 서울에 있는 대학에도 못 가고 저 멀리 지방대학으로 유학을 갈 셈이냐. 정신차려, 이 친구야. 여보게, 정신차려 이 친구야.”

작가 최인호(1945~2013)는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라는 자전적 소설에서 하숙을 치며 3남3녀를 키워낸 어머니를 회고하며 한 말이다.

요즘 중고생을 둔 가정이라면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런 푸념과 고성이 오갈만 하다. 최인호 역시 아들과 딸을 키우며 여느 아버지들과 다름없었던 것이다. 필자 또한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다.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아들이 시험을 못 보고 등수가 훨씬 떨어진 성적표를 보여주자 그만 화가 나서 최인호처럼 아들 녀석을 심하게 꾸짖었었다.

최인호는 3남3녀를 대학까지 보내며 남부럽지 않게 키워낸 어머니의 자녀교육 비결로 맹목적일 정도의 ‘믿음’이라고 회고한다. 그는 어머니에게 공부를 하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것은 형도, 동생도, 누이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께서는 단 한 번도 우리에게 성적표를 보자고 명령하신 적이 없었다. 우리 형제들 모두가 공부를 썩 잘하였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언제나 책상 속에 들어있는 어머니의 도장을 우리가 마음대로 성적표에 찍을 수가 있었다.”

또한 몸이 아프면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학교에 가지 말라고 했고 철없는 자녀들은 결석계를 직접 써서 어머니의 도장을 마음대로 찍어 담임 선생님에게 제출하곤 했다. 서울대 경제학과에 들어간 최인호의 형이 고등학교 3학년 때 수학 과목에서 20점을 맞은 적이 있었다. 그때 어머니는 교무실에 불려 다녀와서도 형에게 이렇게 말씀하셨고 한다.

“쉬엄쉬엄 하거라. 너무 애쓰지는 말아라.” 최인호가 대학 1학년 때 유급을 해도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글쎄, 저 애가 대학년 1학년 때 낙제를 했다우. 그래서 1학년을 두 번씩이나 다니고 있다우. 집안 족보에도 없는 자식이 하나 생겼다우. 내 참, 호호호호.” 하숙을 하며 다시 등록금을 마련해야 했던 어머니라면 대개 ‘이놈아, 어미가 고생을 하는 게 보이지도 않느냐’고 호통을 쳤을 법도 한데 오히려 호탕하게 웃으면서 넘겼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의 속은 얼마나 타들어갔을까…….

최인호는 대학입시를 앞둔 부모가 되어서야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어머니의 비범한 교육철학을 비로소 깨달았다고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이라고 말한다. “어머니는 신식교육을 받지 못하셨으므로 유식하다거나, 교육방법이 투철한 그러한 신식 어머니는 아니셨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있어서 우리들 자식은 하나의 신앙이셨다. 어머니는 우리를 그냥 맹목적으로 믿으셨다.”

반면에 최인호는 자신의 두 아이에 대한 믿음은 어머니의 믿음을 당해내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자식들에 대한 아내와 나의 불신이 아이들을 괴롭히고 그들을 상처 입히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작가 최인호처럼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어머니에게서 단 한번도 ‘공부하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그 어머니이지만 네 아들을 대학에 보냈고 두 명은 박사학위를 받았다. 1남2녀의 손자손녀들을 뒷바라지 했고 이들은 모두 교육대학에 들어갔다.

요즘 학부모들은 대부분 매일 자녀들에게 “공부해라”라는 말을 달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공부하라”는 부모의 청이 많아질수록 자녀들은 공부로부터 멀어지기 십상이다. 공부하라는 소리는 언제부턴가 자녀에게 ‘잔소리’가 되고 심지어 자녀에게 스트레스성 언어로 변질되고 만다. 자녀를 잘되게 하기 위해 하는 부모의 말이 오히려 약으로 작용하지 않고 독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래도 부모들은 안심이 안돼서인지 입버릇처럼 “공부해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공부하라”는 말은 어느새 부모 자녀 간의 대화마저 가로막는 언어의 장벽을 만들고 만다.

교육심리학에서 흔히 ‘로젠탈 효과’가 회자된다. 이는 타인의 기대나 관심을 받으면 재능에 상관없이 능률이 오르고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제부터 ‘공부하라’ 소리 대신에 아이를 맹목적일 정도로 한번 믿어보는게 어떨지!

(❚최효찬 박사: 경향신문 기자 역임, 삼성경제연구소 SERI CEO에서 ‘명문가 위대한 유산’을 주제로 강의 중. 2011년 ‘한국의 저자 300인’에 선정. 저서로는 우리나라와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과 독서교육 비법을 명쾌하게 분석한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독서교육』(2010 문화체육 관광부 우수교양도서) 등 다수의 저서가 있음. 최근 『현대 명문가의 자녀교육』을 출간. http://cafe.naver.com/aplus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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