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한 지인의 요절

2018년 5월의 한 금요일. 캘거리의 한 장례식장에서 지인의 장례식이 있었다. 29살 꽃다운 젊은 나이로 이 세상을 하직한 고인은 가깝게 오랫동안 지내온 막역지우라기보다는 3년 동안 친구 집에서 같이 지냈던 방돌이라고나 할까. 내가 고인을 몇번 돌봐주기도 하고, 친구부부와 고인 모두 함께 나들이도 한 사이라 고인을 안다면 조금 알 수 있는 뭐 그런 사이었다. 비록 고인은 저 세상으로 갔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준 강인한 정신력과 축제와 같은 유머스러움으로 넘쳐난 장례식장 분위기는 오래 기억되리라 생각한다.

먼저 고인을 생각하면, 불굴의 강인함과 회복력이 떠오른다. 불과 4살의 나이에 뇌성종양이라는 판정을 받았던 고인은 뇌성종양 제거수술이 장님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일부의 종양을 그대로 뇌 속에 남겨놓은 채로 살았다. 그러나, 9살 될 무렵 다시 찾아온 뇌종양 수술이 성공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발달 상의 문제와 간질, 제한된 신체 마비, 단기 기억 상실, 부분적인 시력 및 청력상실 그리고 상시적인 코피를 흘리게 되어 매우 도전적인 삶을 살았다.

하지만, 고인은 부정과 비관의 염세적인 삶이 아니라 평소 고인이 좋아했던 어느 한 만화영화 속의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표현처럼 하쿠나 마타타 (hakuna matata: “오늘 하루 걱정마. 모든게 문제 없을거야”) 의 태도로 살았다. 그러나, 고인은 2016년 12월에 또 긴급 입원했는데 간과 큰창자에서 다시 종양이 발견됐다. 친구 부부와 마누라(manura=지혜의 여신)는 병문안 후, 너무 많은 수술 호스와 튜브로 덮혀 있어서 얼굴조차 제대로 볼 수가 없었고, 오로지 손가락을 까닥까닥함으로써 서로 대화를 주고 받았다고 전해주었다. 당시. 조만간 다른 세상을 준비하라는 의사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으로 회복하여 2018년 4월까지 생명을 지속하였다.

고인은 약 25년간 종양에 맞서 하쿠나 마타타의 태도와 “과거는 잊어. 현재에 살고, 그리고 미래를 내다 봐” 라는 신조로 살면서 오뚜기 같은 강인한 정신력을 남겼다. 장례식 당시, 나는 감기 기운과 운동으로 인한 사타구니 근육 파열로 한 일주일 동안 고생하면서 일상생활이 벅차고 온 몸이 무겁게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고인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간병인과 휠체어에 의지하며 생활하면서도 되도록이면 혼자서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고인의 강인한 독립심은 나 같은 보통 사람에게서는 볼 수 없는 삶의 태도였다.

고인이 이런 삶을 살 수 있게 해 준 한 가지 원동력은 평소 고인이 즐겨했던 유머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항상 뒷주머니에 유머책을 휴대하면서 우리들을 웃겼는데, 남들을 즐겁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나는 종종 영어식 농담을 얼른 이해하지 못해 답을 듣고나서야 참 웃기는 유머라고 뒷북을 많이 쳤다. 기존의 생각을 넘어 샛길로 가는 깜찍 발랄함 (창의성)을 가졌던 고인은 유머를 통해 신선한 아이디어를 내는 것을 보여주었고, 창의적인 발상이 태어나는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생전에 유머로 여러 사람들을 웃겼던 고인처럼 고인의 장례식은 마치 한 바탕 큰 축제같았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 추가로 의자를 놓았지만 그것도 모자라 선 채로 장례식을 마쳤다. 고인은 비록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도전적인 삶을 살았지만, 장례식장이 그렇게 붐볐다는 것은 고인의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잡초같은 강인한 기질을 바탕으로 평소 늘 재치있는 농담을 했던 고인의 남다른 삶이 있었기에 웃음이 가득한 장례식장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 이 다음에 내가 죽게 되면 몇 명이나 장례식에 참석하게 될까? (❚ 김주성: 매니토바 대학교 Applied Health Sciences 박사과정 재학 중. E-mail: umkim9@myumanitoba.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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