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자긍심의 위대한 힘, 석주 이상룡 가

최효찬

엄혹한 겨울바람이 몰아치던 1911년 1월 5일, 5백 년 동안 대대로 살아온 고향 안동을 떠나 전 가족을 데리고 망명길에 오른 이가 있었다.

“공자, 맹자는 시렁위에 얹어두고 나라를 되찾은 뒤에 읽어도 늦지 않다”는 것이 망명의 변이었다.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찾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각오를 새기고 걸음을 재촉했다. 그때 그의 나이 쉰 넷이었다. 쉰을 훌쩍 넘긴 나이에 수십 명에 이르는 전 가족을 이끌고 삭풍이 몰아치는 엄동설한에 망명길에 오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상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1858-1932)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분연히 일어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실천했던 것이다.

석주는 1월 27일에 신의주에 도착해 압록강을 건너기에 앞서 비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시를 지었다.

“이미 내 논밭과 집 빼앗아 가고/다시 내 아내와 자식을 해치려 하네/이 머리는 차라리 자를 수 있지만/이 무릎을 꿇어 종이 되게 할 수 없도다.”

석주는 고성이씨 17대 종손이며 임청각(보물 182호. 안동시 법흥리 20번지)의 소유주였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석주는 경제적 풍요와 함께 학문으로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국가의 위기 앞에 현실에 안주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고난의 길을 자처했고 상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내며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서간도로 망명한 이후에는 신흥학교(신흥무관학교의 전신)를 이회영과 함께 건립해 신교육에 앞장섰다.

석주가 서간도에서 독립운동과 함께 동포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교육 계몽운동을 펼친 것은 그의 선대로부터 대물림되어 내려 온 ‘학행(學行) 중시’의 가풍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학행’이란 배운 것은 그대로 실천하기에 힘쓰는 것이다. 석주 가에는 17대, 500여 년 동안 대대로 서첩과 문집을 내는 전통을 이어왔다. 석주 가의 자긍심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자부심으로 석주 가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녀교육에 소홀하지 않았다. 석주 가에는 유명한 가정교육 일화가 있다. 석주의 큰아들 이준형은 간도에서 독립운동의 와중에도 며느리에게 직접 공부를 시켰다. 출산 후 몸조리를 할 때를 이용해 며느리에게 꼭 필요한 덕목을 ‘논어’와 ‘맹자’ 등에서 며느리에게 꼭 필요한 문장들을 뽑아 맞춤형 공부를 시켰다. 시부모가 며느리를 직접 교육하는 것은 집안의 오랜 가풍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또 이준형의 아들 이병화는 한국전쟁 당시 충남 아산에 피신 중에도 스무 살 전후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글을 가르쳤다. 중앙중학교 교장을 지낸 이범증은 이병화의 여섯째 아들로 그때 부친에게서 천자문을 배웠다. 이범증은 중학교를 마치고 진학을 못해 1년 동안 농사를 지을 때 모친에게 ‘맹자’를 배웠고 여러운 형편을 이겨내고 고려대에 진학했다.

임청각 사람들에게 교육은 첫 번째로 중요한 덕목이었다. 이준형은 일제에 항거해 자결을 하면서 아들 이병화에게 손자의 교육문제를 유언으로 남겼다. “종손의 학업은 비록 전답을 줄이고 재물을 쏟아 부을지라도 중도에 그만두지 마라.” 일제는 독립운동가 집안이라며 온갖 압력을 행사해 종손이 중학교에 다니는 것조차 막았다.

이병화의 장남 이도증은 안동에서 공부를 석주 가문은 안동에 정착한지 500여년에 걸쳐 과거시험에 합격해 벼슬길에 나아간 이는 병조정랑(정5품)을 지낸 이후영 단 한 명에 불과했다. 이는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임청각은 안동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명문가에 속하지만, 과거를 통해 벼슬길에 오른 이가 500년 동안 단 한명에 불과하고 관직도 높지 않았던 것이다. 석주 가야말로 이른바 ‘정신의 귀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석주 가는 3대에 걸쳐 항일 운동가를 배출했다. 석주를 비롯해 독립운동으로 건국훈장을 받은 이가 9명에 이른다. 일제에게는 눈엣가시와 같은 가문이었는데 이런 임청각의 기운을 말살하기 위해 일제는 임청각의 집을 허물어 집 앞으로 중앙선 철길을 내었다.

중국의 안씨(顔氏)가훈에는 “후손에게 재물을 남기면 십년의 재산이 되는 반면, 지혜를 가르치면 백년의 재산을 물려주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임청각 후손들은 선대의 독립운동으로 인해 고난 속에서 현대사를 살아왔지만 이들에게는 자긍심이라는 보이지 않는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셈이다.

(❚ 최효찬 박사: 경향신문 기자 역임, 삼성경제연구소 SERI CEO에서 ‘명문가 위대한 유산’을 주제로 강의 중. 2011년 ‘한국의 저자 300인’에 선정. 저서로는 우리나라와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과 독서교육 비법을 명쾌하게 분석한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독서교육』(2010 문화체육 관광부 우수교양도서) 등 다수의 저서가 있음. 최근 『현대 명문가의 자녀교육』을 출간.  http://cafe.naver.com/aplus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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