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자신에게 친절해 보는 날

김성현

생각 1

김: 지금 어떤 일 하세요?

나: 제가 해보고 싶었던 일이요. 그것도 아주 오래 전, 한 30년 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어요.

김: 좋겠다.

나: . . .

난 차마 30년 전에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김에게 나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더더욱 그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가끔씩 내가 빗나간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그렇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최선을 다했으니까. 그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정말 열심히 했으니까. 물론, 지금도 그렇다. 단순히 좋아하는 노래만 찾아듣기만 하는 것에서, 이제는 열심히 찾아서 노래를 좋아하도록 스스로를 만들 정도로 열심히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클래식, 재즈, 언더, 기악 등 다양한 음악을 찾아듣고 감상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새 귀가 트이는 듯 하고, 음악의 깊이가 깊어지는 듯도 하다. 또, 그 덕에 세상 소리를 마음으로 듣고 취미로 그림그리는 복까지 덤으로 받았고, 한 편의 시같은 노래가사에 마음을 빼앗기는 호사도 누리고 있다.

생각 2

어쩌면 손가락질 받을 수도 있는 이야기를 조금만 벗어나서 얘기해보자면, 시간에 쫓기고 생활에 쫓기는 날에는 아주 잠깐 만이라도 멈춰서서 하늘을 올려 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날엔 그냥 스스로 자신에게 친절해보는 날로 해보라 말하고 싶다. 너무 바쁜 탓에 때로는 세상이 친절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도, 세상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을 터. 그렇다고 삶을 원망하거나 스스로 신세한탄을 한다 해도 특별히 달라지는 것도 없는, 삶이 당장 만족스럽게 바뀌지도 않을 때도 있지 않을까?. “우리 삶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잖아요. 어차피 회피할 수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요, 뭘.”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세상 모든 근심을 끌어 와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싸우기 보다는 때로는 그렇게 생각하는 날도 있어야 한다고 얘기해주고 싶다. 세상과 싸워 이기는 기쁨보다는 스스로에게 친절해서 얻는 행복이 더 길게 오래 가는 법.  수 십 년의 세월이 흘러도 스스로가 싫어지지는 않더란 얘기를, 열심히 하면 그런대로 잘 살아왔다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 그런 날이 되더라고. 스스로에게 웃음으로 대답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생애 최고의 날이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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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소년을 만나다

혜범

“어디로 갈래?”
“길은 없대매요. 그러나 가는 곳이 길이라며요.”

상좌는 갔다. 재밌다. 반짝이는 눈, 그리고 무엇인가 해보고자 하는 눈빛. 더는 묻지 않았다. 그 눈에서 승자 투창을 본다. 문이 없어 도망칠 곳이 없는데도 계속 부딪힌다. 그래 간절하면 부딪혀 깨져라.

“스님 뭐가, 당장 뭐가 필요하세요?”
“책꽂이 하나 만들어주고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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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응.”
“우리 어디라도 가요. 바다가 보고 싶어요.”
“. . . 운전 좀 해주련?”
“예.”

하여 늙은 중과 젊은 중, 둘이 바닷가에 앉았다.

내 머무는 곳에서 바다까지는 두 시간 거리다. 자제 혹은 자유롭겠다며 두 시간 거리 밖에 되지 않는 데도 마음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기에 혼자 겨울바다에 청승맞게 올 일이 없었던 거다. 그렇더라도 바다는 늘 거기에 있었다.

“스님.”
“응?”
“스님만 뵈면 통쾌해져요.”
“미친놈. 난 너만 보면 답답해지는데. 아무래도 오늘밤 여기서 자고 가야겠다.”
“예.”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숙소를 잡았다. 일출도 볼 수 있는 곳이다. 몸에 열이 끓는다. 의사는 대상포진이라고 했다. 누웠다. 누운 채 바다를 보았다. 바다는 하얀 깃발을 펄럭이며 밀려왔다 밀려가곤 했다.

“스님아.”
“예, 스님.”
“차에 가서 원고 가지고 와서 교정 좀 봐라.”
“independently existent, to do as one pleases in a selfish manner로요?”
“아니 . . . 그러면 아마 니가 다 다시 써야 할 걸.”
“. . . . . . .”

. . . [중간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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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처 잠만 잤다. 상좌가 교정지를 챙겨든다. 흘낏 보니 교정지도 온통 피바다다.

“대구속을 느꼈느냐?”
“. . . 대자유를 느꼈습니다.”
“부족하고 모자른 중은 될 지언정 부끄러운 승려는 되지 마라.”
“네, 스님. …댕겨오겠습니다.”
“다신 안 와도 된다.”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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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좌의 모친 49재는 그렇게 끝났다. 상좌를 터미널에 내려놓고 나는 다시 돌아왔다. 늙고 병든 백구가 쓰다듬어 달라고 꼬리를 흔들며 다리에 몸을 비빈다. 상좌는 왜 강릉 바다가 보이는 산언덕에 당신의 모친 뼛가루를 뿌렸을까, 나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상좌가 만들어 놓고 간 책꽃이에서 파도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

February: (진부한) 겨울 회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