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진부한) 겨울 회상

김 성 현

1.

뭘 향해 가는지 모른 채 둥둥 떠다니다, 무심(無心)히 거울 속으로 떠 오르는 얼굴을 들여다 본다. 달려온 시간이 참 부질없이 느껴진다. 굳이 왜 여기 살고 있는 지를 알 수 없는 표정이다. 그건 아마 하얀 겨울 풍경이 마음을 쉽게 털어낼 수 없게 시간과 기억을 꽁꽁 언 땅속에 깊게 묻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겨울 밤은 때때로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지치게 만든다. 모호한 정체성을 걸치고 이런저런 사람들과 뒤섞여 이리저리 치인 경험이 늘어갈 수록 나는 더 작아지기도, 또 커지기도 한다. 결국, 때로는 고개 들고 바라보는 끝점마저도 생겨났다 사라지기도 한다. 내 자신이 부딪치고 찢기더라도 꼬깃꼬깃 구겨져서는 안 될 일. 회상의 겨울 공기는 내 마음을 쉽게 털어낼 수 없게 한다.

 

2.

모두가 어쩔 수 없이 질척거리고 걸리적거리는 길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나 혼자만 나만의 불편으로 붙잡아둘 수는 없는 일이다. 가끔 치미는 불편한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르는 게 조금은 분하기도 하지만, 그저 입 꾹 다물고 발 코앞만 뚫어지라 보고 걸어갈 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막바지가 되어서야 시간 도둑에게 툴툴거리는 것도 사치스러운 생각이다. 살짝 끌어당긴 나무의자에 등과 어깨를 돌돌 말았다 폈다 하며 앉아 있는데, 기분이 그런대로 괜찮다. 오랫동안 내 자리가 없었던 건 아닌데, 마치 내 자리는 아니지만 언젠간 꼭 한번 앉아보고 싶었던 자리에 앉은 느낌이랄까, 그런 기분이 든다. 널브러진 언어들이 찔끔거리며 안주할 자리를 찾아 놓고는, 미안했던 듯, 이제야 겨우 내가 엉덩이 걸칠 만큼 자리를 내주는 선심이 눈곱 만하다. 사각사각 소리없이 쌓이는 알량한 회상 덩어리.

 

두 손 꾹 찔러넣고 걷는 턱없이 작은 보폭이 마냥 조심스럽다. 뽀득뽀득하는 겨울 소리를 거미줄보다 얇은 공기 줄에 걸어 놓고 보려면 숨소리마저 삼켜야 한다. 포근한 숨소리가 얼굴을 쓰다듬고 발그스레한 수줍음을 띠기 시작하면, 숨소리를 점점 더 크게 내게 되고, 눈이 입김으로 가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얀 입김에 위로받으며, 포근하게 쌔근거리는 소리 때문인지 마음이 따뜻해진다.

 

눈앞의 옅은 안개가 흩어지듯 추억은 사라지게 마련이라지만, 기억으로 되살아나는 것은 기억해야 한다. 표독스러운 기억의 발목을 홱 움켜잡아서 이제껏 징징대다 겨우 잠든 회상의 울타리에 걸어 놓아야 한다. 어렴풋이 다가와 스르르 주저앉은 달무리. 흐린 기억이 이리저리 겉돌다 불쑥 되살아난다. 랩소디 인 그레이, 오선지에 들리지 않는 소리의 기억들이 돌고 또 돈다. 도돌이표. 기억, 겨울, 회상, 또 다시 도돌이표.

January: 새해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