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부모와 함께 도서관에 자주 가라, 보르헤스 가

최효찬

아르헨티나 출신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는 단편소설집 ‘픽션들’에서 보여준 그 난해함으로 인해 일반 독자보다 사상가나 소설가들에게 인기 있는 작가다. 20세기 서구 지성사를 대표하는 푸코를 비롯해 데리다, 우베르트 에코, 옥타비오 파스 등에 의해 작품이 분석됨으로써 더 유명해진 것이다.

보르헤스는 모국어인 스페인어로 읽기 이전에 영어로 읽는 법을 먼저 배웠다. 어릴 때부터 소년 보르헤스가 푹 빠진 영어 책 속에는 현실보다 훨씬 멋지고 신나는 신세계가 담겨있었다. 그는 영어 덕분에 서구중심의 문학계에서 ‘변방’으로 치부되던 아르헨티나 출신이 세계 문학계를 주도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가 어릴 때부터 영어와 스페인어의 이중 언어를 쓰는데 아주 익숙했던 비결은 바로 영국인 할머니에게 있었다. 집안에서 보르헤스는 스페인 이름인 호르헤 대신 영국식 발음인 조지라고 불렀다. 영국인 할머니는 아들과 손자뿐 아니라 며느리에게까지 영어를 가르쳐 집 안에선 모두 영어를 쓰게 했다. 보르헤스의 집은 문화적 주관이 뚜렷했던 영국인 할머니에 의해 아르헨티나에 있는 조그만 영국 식민지 같았던 것이다.

보르헤스는 어릴 때에 친할머니와는 영어로, 외할머니와는 스페인어로 말했다. 영어와 스페인어가 서로 다른 언어라는 사실은 그가 철들고 나서야 알았다고 한다. 보르헤스가 처음 책을 접한 것은 할머니 무릎에 앉아 영어로 된 영국 동화집을 들으면서부터였다. 그의 부모는 당시 귀족가문의 전통대로 보르헤스를 일반 학교에 보내는 대신에 가정교사인 영국인을 두어 교육시켰다.

부모가 할머니 집에서 분가하자 보르헤스는 스페인어 읽는 법을 배우고 스페인어 책을 읽게 된다. 더욱이 아버지는 어마어마한 영어 책을 소장한 개인도서관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영어책으로 가득한 개인도서관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보르헤스의 할머니 덕분이었다. 아버지의 유년시절에는 할머니가 구입한 동화책과 모험소설들로 가득했고 그 책들을 아들인 보르헤스가 접하게 된 것이다.

보르헤스가 처음으로 다 읽어본 소설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이다. “내가 처음으로 다 읽어본 소설은 ‘허클베리 핀’이다. 그 뒤 ‘역경을 딛고’와 ‘캘리포니아의 멋진 나날’을 읽었다. 그리고 매리어트 대위의 책들, 롱펠로우의 시집, 찰스 디킨스의 소설, 그림의 동화집을 비롯해, ‘보물섬’, ‘돈키호테’, 천일야화 등도 읽었다.” 그는 어릴 적에 마크 트웨인, 브레트 하트, 호손, 애드거 앨런 포 등을 읽었을 때부터 미국을 무척 좋아했다고 말한다. 이는 모두 할머니가 영어책을 사들여 아버지의 도서관을 만들어준 데서 시작한다.

보르헤스가 어린 시절 가장 영향은 받은 것은 ‘돈키호테’였다. 그런데 스페인어로 읽기에 앞서 영어로 된 ‘돈케호테’를 읽었다. “나는 여섯인가 일곱 살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세르반테스 같은 스페인 고전시대 작가들을 흉내 내려고 했다. 또한 조악한 영어로 그리스 신화를 요약한 글도 썼다. 나의 첫 문학 모험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939년 보르헤스를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알려지게 한 첫 단편소설인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는 어린 시절 읽었던 영어판 ‘돈키호테’의 기억에서 탄생한 셈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보르헤스를 키운 것은 도서관이었고 그곳에서 그는 백과사전을 읽기 시작했다. 보스헤스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간 도서관에서 백과사전을 즐겨 읽었다. 이것은 영국의 백과사전을 즐겨 보았던 할머니와 그 할머니의 습관을 물려받은 아버지에게서 세대를 이어 물려받은 유산이라고 한다.

보르헤스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백과사전을 통해 정보를 얻도록 할머니의 무릎에 앉아 어릴 때부터 교육받았다. 그는 글쓰기도 백과사전의 산문체를 모델로 삼도록 하는 교육을 받았다. 보르헤스는 생일 때 선물로 백과사전을 사달라고 요구했는데 19살 때 백과사전을 선물로 받았다. 그가 “백과사전은 알파벳 순서로 되어 있어서 다음 페이지의 내용을 짐작할 수가 없다”면서 그게 백과서전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보르헤스가 현대 소설가의 거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부터 영어를 익힐 수 있었던 집안 배경이 작용했고 무엇보다 아버지를 따라 간 도서관에서 읽은 백과사전 덕분이었다. 주말에는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 소풍을 가보자!

(❚ 최효찬 박사: 경향신문 기자 역임, 삼성경제연구소 SERI CEO에서 ‘명문가 위대한 유산’을 주제로 강의 중. 2011년 ‘한국의 저자 300인’에 선정. 저서로는 우리나라와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과 독서교육 비법을 명쾌하게 분석한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독서교육』(2010 문화체육 관광부 우수교양도서) 등 다수의 저서가 있음. 최근 『현대 명문가의 자녀교육』을 출간.  http://cafe.naver.com/aplus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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