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창조적 횃불은 고통에서 피어난다. 서계 박세당 가

사문난적(斯文亂賊). 성현(공자와 주희)의 학문과 상반된 해괴한 논리를 펼쳐 정도를 해치는 도적이라는 의미다.

원래 유교 반대자를 비난하는 말이었으나 조선 중엽 이후 당쟁이 격렬해지면서부터 그 뜻이 배타적이 되어 유교의 교리 자체를 반대하지 않더라도 그 교리의 해석을 주자의 방법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사문난적으로 몰았다.

사문난적이라고 극단적 공격을 받았던 이들로는 허균과 윤휴, 박세당이 대표적이다. 달리 말하면 이들은 창조적 사고로 시대의 부조리와 부패한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항한 혁신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가 불안하고 부패할수록 시대정신을 새롭게 밝히는 혁신적 사고가 필요한데, 이러한 혁신적 사고는 불가피하게 기존의 사고체계와 갈등을 수반하는 것이다. 결국 이들은 대학자로 이름을 날렸지만 조선왕조실록의 사관이 쓴 인물평에는 단 한 줄도 거론되지 않았다. 집권층이 의도적으로 ‘왕따’를 한 것이다.

서계 박세당(1629-1703)은 32살 다소 늦은 나이에 문과에 장원 급제해 화려하게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최우수 장원 합격자인 서계는 정6품인 성균관전적에 임명돼 화려한 관직생활의 첫걸음을 내딛었다. 36세에는 누구나 선망하는 옥당(홍문관 교리)에 올라 관료로서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서계는 숱한 상소와 주청(임금에게 아뢰어 청하던 일)을 올리기도 하여 직언을 잘하는 ‘감언지사(敢言之士)’라는 평을 얻었다. 당시 현종은 온천욕을 좋아해 수시로 의장을 차리고 온천욕을 떠났다.

막대한 경비가 소요됐을 뿐만 아니라 민심도 흉흉했다. 서계는 현종에게 국왕과 대신의 직무태만과 왕실의 재물낭비를 거론하며 국정 쇄신을 요구했다. 서계의 진면목은 감언(敢言)과 직언에 있었지만 이로 인해 벼슬로부터 멀어졌다. 서계는 8년간의 관직생활을 스스로 접고 1668년 40세에 수락산자락인 석천(의정부 장암동)에 은거하며 학문과 저술활동에 전념했다.

서계는 자신의 은거지에서 20년 동안 기존의 주자학적 세계관을 전복하는 경전의 재해석에 매달렸는데 이를 집대성한 것이 <사변록>이다. 당시 조선은 병자호란 등으로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사대주의적 명분론에 집착하고 있었다. 서계는 이러한 현실에서 혁신적이고 실용적인 주장을 담은 <사변록>을 통해 명분에 사로잡힌 주자학적 세계관에 메스를 가하며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으려고 했다.

무려 30년 동안 쓴 이 책은 사서와 시경, 서경의 본문을 재해석한 것이다. 그는 또한 노자 도덕경, 장자의 연구를 통해 지배세력이 금과옥조처럼 여긴 주자학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 하였다. 하지만 그의 새로운 경전 해석은 조정과 학계에 큰 반발을 불러왔고 급기야 ‘사문난적’이라는 극단의 공격을 받았다. 그는 자신을 사문난적으로 매도한 집권층인 송시열과의 불화로 끝내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더욱이 서계의 두 아들 역시 직언을 굽히지 않아 처참하게 생을 마쳤는데, 자녀들 역시 아버지와 닮아 있다. 그의 두 아들인 박테유와 박태보는 당대의 인재였다. 두 아들 모두 과거에 합격했고, 태보는 아버지에 이어 장원 급제를 했다. 두 형제 모두 강직한 성품도 부친과 닮았다. 결국 직언을 하던 태유는 모함을 받고 역모죄를 뒤집어썼고 그 후유증으로 요절했다.

동생 태보는 형이 죽은 지 3년 후인 1689년에 인현왕후의 폐위를 반대하다 숙종에 의해 모진 고문을 받고 진도로 유배도중 옥독(獄毒)으로 노량진에서 36살의 나이로 숨졌다. 아들이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유배 길에 오르자 아버지 서계는 “너는 다시 살아날 가망이 없으니 조용히 죽어서 마지막을 빛나게 하라”고 하자 “어찌 아버지의 가르침을 좇지 않으오리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을 한 서계는 돌아서서 아들 몰래 얼마나 오열을 했을까.

의리와 절개를 상징하는 선비들은 무엇보다 ‘출처(出處)’를 중시한다. 나아갈 때 나아가지 않거나 나아가지 않을 때 나아가는 것은 선비정신을 모독하는 것이다. 선비정신은 나아가야 할 때 바로 나아가는 것이다. 서계와 두 아들은 출처에 명확한 처신을 했고 위기를 자초했다. 하지만 이들의 처신에서 희생 없이는 결코 존경받을 수 없고 얻고자 하는 바를 얻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하게 된다. 서계가문은 권세만이 사람의 길이 아님을 알게 한다.

(❚ 최효찬 박사: 경향신문 기자 역임, 삼성경제연구소 SERI CEO에서 ‘명문가 위대한 유산’을 주제로 강의 중. 2011년 ‘한국의 저자 300인’에 선정. 저서로는 우리나라와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과 독서교육 비법을 명쾌하게 분석한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독서교육』(2010 문화체육 관광부 우수교양도서) 등 다수의 저서가 있음. 최근 『현대 명문가의 자녀교육』을 출간.  http://cafe.naver.com/aplus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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