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용사 품사 사용에 관해서

어느 한 기관 소식지에 형용사 투성이로 씌여진 글이 있었다. 그렇게 형용사로 꾸며진 미사여구의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것이 그 글쓴이의 수준 때문인지, 그렇지 않으면 그 기관과의 관계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의 글쓰기 잣대로 보면 유감 천만의 글이었다.

자세한 예를 밝힐 수는 없지만, 다음 문단들을 읽어 보면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가’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러한 종류의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 여전히 있다는 것을 감안,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를 스스로 판단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쓰기의 아주 미미한 한 부분, 형용사의 품사 사용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한다.

앞서 말한 형용사는 본래 사람이나 사물의 존재, 성질, 또는 상태를 표현하는 품사로 주로 명사를 꾸미는 일을 한다. 또, 한글의 형용사는 독립적인 수식어로, 또는 서술어로 쓰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저 빨간 장미, 진짜 이쁘다.” 에서 밑줄친 부분이 각각 그러하다. 이렇게 형용사는, 사물, 즉 장미가 어떠한 장미인지, 그 장미의 상태가 어떠한 지를 아주 자세하게 설명하거나 묘사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품사이다.

그러나, 어떤 글에서 형용사가 필요 이상으로 사용된 글이 있다면 독자는 그 글을 쓴 사람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의심해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서, 한 투고자가 “카리스마 넘치는 우리 x x 님은 퇴원한 후, 오늘 대주주 회의에 당당한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이 영광스러운 자리를 마련해 주신 우리 x x 님은 참석자들의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으시며 연단에 서셨습니다.” 라고 할 경우, 어떠한 생각이 드는가?

모르긴 해도, 이 글을 쓴 사람이 그 우리 x x 님을 극찬한 느낌이 들 것이다. 개인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면 별 상관이 없겠지만, 이 글이 만약 회원들을 상대로 배포하는 글이라면 문제가 있다. 글의 종류와 상관없이 너무 많은 형용사가 씌여지거나, 또는 형용사의 용법이 미사여구를 계속해서 늘어놓는데 쓰인다면 독자로서 이러한 글을 경계하는 것이 옳다. 특히, 글 쓰는 목적에 따라 글의 종류와 성격이 달라지는데, 앞의 보기에서처럼 이런 식으로 형용사가 쓰인다면, 독자를 호도하는 성격을 띄기 때문이다.

사실, “x x 님은 퇴원 후, 몇월 몇일날 회의에 참석하셨습니다.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x x 님께 참석자들은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라고만 해도 충분히 그 의미가 전달될 것이다. 굳이 “카리스마 넘치는”, “당당한”, “우뢰와 같은” 이라는 형용사 수식어를 동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글을 쓸 때 최대한 형용사 사용을 기피하는 부류에 속한다. 물론, 다음과 같은 성격의 글을 쓸 때는 예외이다. 다음의 문장을 보면, 앞에서 보았던 보기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받을 것이다.

예를 들면, “저 흐드러진 벗꽃 아래 있는 선남선녀들 좀 보소. 그들의 환한 미소는 옛날 행복했던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오. 우리가 늘 즐거운 마음으로 이렇게 살갑게 살 수 있는 것도 다 그 아름다웠던, 젊은 시절의 그 추억 때문이 아니겠소?” 이 문장에서,  이렇게 많이 사용된 형용사 때문에 앞서 얘기했던 우리 X X에 대한 과도한 아첨과 같은 의미가 풍겨지는가? 글의 종류에 따라 형용사의 용법은 이렇게 다른 느낌을 가져다 준다.

조선일보에 기고하는 송태호 의학박사는 자신의 4월 15일자 기고에서, 동종업계에서 일하는 다른 의사의 말을 듣고 아스피린 복용을 거부한 자신의 환자 이야기를 거론하며, 사람들이 넘쳐 흐르는 정보 속에서 어떤 좋은 정보를 선택할 지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논문을 써 본 경험이 있고, 수도 없이 많은 글을 읽고 쓰는 나로서 이분의 말씀에 공감했던 부분은 바로,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믿을 만한 연구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일반인들도 각자 어떤 의학 정보가 믿을 수 있는 정보인지에 대한 스스로의 기준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들도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 왜 좋은 글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하고, 어떤 글이 신뢰할 수 있는 글인지를 식별해내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앞서 보여준 예에서처럼 형용사로 도배된 글이 어떻게 독자를 잘못 이끄는지를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흘러 넘치는 정보를 그냥 믿을 것이 아니라 평소, 책이나 신문을 꾸준히 읽으면서 신뢰할 만한 정보를 찾아낼 수 있도록 힘을 기르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면, 스스로 독자를 바보로 취급하거나 무시하는 따위의 글을 배제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이 현명해지지 않고서야 이런 식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어디 줄어들긴 하겠는가? 여러 다른 종류의 글을 자주 읽어 힘을 기르면, 글이라고 다 같은 글이 아님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정신적으로 피해를 주는 그러한 글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Olivia 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