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는 직업의 귀천을 적게 따진다

By Olivia Do

개인의 경험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캐나다 문화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여 이번 칼럼에 얼마 전에 만난 한 친구와의 대화를 소개하려 한다. 오랫만에 만난 그 코케이시언 친구와의 대화에서, 나는 주제와는 상관없이 제 2의 인생을 즐기고 있는 그 친구를 보면서 부러움을 느꼈다. 그 친구는 오랫동안 English as an Additional Language 교사로 일하다 작년에 은퇴했고, 이전에 가르쳤던 학교로부터 가끔씩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학교에 나가곤 한다.

그 친구를 보면서 느낀 부러움은 바로, 생활의 질이 차고 넘치는 것은 아니지만, 느긋하게 취미 생활을 하면서도 짬짬이 일 할 거리가 있어서 자신의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여건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집에서 빵을 굽고, 정원을 가꾸며, 손자들도 봐주고, 그러는 틈틈이 학교로 와 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학생을 가르치거나 교육 자재를 연구하느라 분주하다.

이 날, 그 친구와의 대화는 우리 둘 다 숫자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서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내가 말했다. “난 종종 어떤 것을 기억하지 못해요. 특히 숫자나 가격 같은 것 말이에요.” “괜찮아. 나도 그래.”  친구가 위로했다. “아마 기억해야 할 이유가 없어서인가 봐요.” “그래. 여러 가지를 다 기억할 수는 없지. 특히 아주 바쁠 때는…”

내가 다시 말했다. “네. 아무래도 난 기본적으로 숫자를 세는 체질은 아닌 것 같아요. 그렇지만,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며 일하면 너무 즐겁고 좋아요.” “응. 넌 사람을 케어하는 사람이라서 그래. 사실, 나도 그래. 전기세가 얼마고 물세가 얼마고를 물어보는 사람들을 보면 좀 이해가 안 가. 내가 보조교사로 일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내가 시간당 얼마를 받고 일하는지를 굉장히 알고 싶어해. 그게 왜 중요한 지 모르겠어. 내가 좋아해서 하는 일이고, 필요해서 하는 일인데 말야. 돈이 통장에 들어오지 않으면 몰라도, 내가 일일이 급여 액수를 기억해야 할 필요는 없잖아?”

나는 맞장구를 치면서, “맞아요. 얼마 전에 한 친구가 페이 데이가 언제냐고 묻길래 잘 모르겠다고 했더니 이상한 표정을 짓더라고요. 자신은 메꿔야 될 구멍이 많아서 페이 데이만 기다린다고 하대요. 그걸 보면서 ‘페이 데이가 언제였지? 지난 번에 확인한 것 같은데’ 이렇게만 생각했어요. 난 그 날짜가 휴대전화에 들어오면 ‘아, 들어왔구나.’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그래. 너나 나나 우리는 수를 세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확실한 것 같아.” 친구가 답했다. 우리는 둘 다 “호호호.” 하고 웃었다.

이 대화에서 나는,  ‘캐네이디언들 사이에서도 이런 종류의 질문이 주어지고, 그것에 대답하는 것을 불편해 하는 사람도 있구나.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를 느꼈다. 캐나다에 살면서 많은 한국인들로부터, – 초면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별로 친한 사이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런 류의 질문들, 가령, “집을 얼마주고 사셨어요?”나 “전기세가 얼마 나와요?” 와 같은 아주 주관적인 대답을 해 줄 수 밖에 없는 질문을 받고는 한다. 자신들이 알고 싶은 것을 알 때까지 집요하게 캐묻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그렇더라도 ‘그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생각할 뿐이다.

신기하게도, 이 대화에서 내가 이해했던 것은 캐나다는 한국보다는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일이 적다는 것이다. 그 친구의 경우에도, 식구들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주변 친구들이나 이웃들은 그 친구가 보조교사로 일하는 것을 깔보거나 하지 않는다. 다들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려니 한다. 요즈음처럼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운 때에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좋겠다는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해야 하나?

사실 이 친구처럼, 내가 알고 있는 매니토바 대학교의 여러 교수들도 디렉터 자리에서 물러나 그냥 평교수로 일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개인적인 친분으로 만날 경우, 교수로서가 아닌 완전히 동네 옆집 아저씨 같이 대해준다. 우리 애들 학교의 한 선생님 남편도 고등학교에서 수학교사로 몇 수 십년 동안 일 했는데도 불구하고, 은퇴를 하고 난 이후에는 그저 아주 평범한 이웃으로 돌아와 다른 사람들의 집을 고쳐주는 수리공으로 살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한국 이민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아는 사람으로부터 전해 들은 한 이야기에서, 대부분의 한국 학부모들이 맨 마지막 시간에 배치된 의치대 학과 설명회에 몰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역시 한국인들의 머리 속에는 “의치대가 최고의 선망 학과’라는 편견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의치대가 ‘귀중하고 높은 자리에 오르게 하는 학과’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한, 그들 아이들의 교육 발전 역시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앞서 이야기한 그 친구와의 대화는, 캐나다가 직업의 귀천을 덜 따지는 나라 –상대적으로 한국은 직업의 귀천을 아직까지도 너무나 많이 따지고 있는 것으로 부각되긴 했지만, – 라는 사실을 깨닫는 자리가 되었다. 은퇴 후, 그동안 누렸던 사회적인 포지션에서 한 단계 내려와 일을 함에도, 주변 사람들이 그저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부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 우리 한국인들은 언제쯤이면 이렇게 돌아가는 캐나다를 이해하고 좀더 폭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