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nies Fashion Show: “We are Here.”: 한복 만들기, 그리고 패션쇼에서 모델이 되기 위한 도전. (Korean)

Written by Eun Kyeong (Olivia) Do

난생 처음으로 옷을 만들었다. 그것도 다른 코리언 가족들을 포함하여 여러 민족 사람들과 함께. 먼저 이런 활동을 하게 해 준 캐나다 정부 New Horizons for Seniors Program 에 감사한 말씀을 전한다. 이 프로젝트에서 나의 역할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한 한 사람으로서 시니어들이 옷을 만들고, 그 옷을 입고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특히, 시니어들이 활동 중에 겪게 될 지도 모르는 어려운 점을 찾아내어 해결해 주고 전체 프로젝트가 잘 돌아가도록 도와주는 그런 역할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다른 회원들과 마찬가지로 참여자로서 함께 활동하는 것이었다. 이 글은 이런 활동을 하면서 느낀 개인적인 경험에 관한 글이다.

나는 이번 행사에서 아주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옷만 입고 살았던 나로서는 옷 만들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란 것을 수시로 느꼈다. 또, 무대 위에서 말을 하고 노래를 해 본적은 있었으나, 실제 모델로 걸어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라 이번 활동이 내게는 잊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옷 만들기는 어려웠지만 나에게는 더 없이 의미있는 일로 또 즐거운 추억으로 자리잡았다.

 

 

 

 

 

 

 

그 중에서, 이번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하면서 참가자로서 느꼈던 어려운 점 (시간 및 시력 싸움, 그리고 인내심 싸움)과 극복 방법 (활동과 관련한 동년배와의 수다 및 모임 초대), 이 활동을 잊을 수 없는 이유 (처음으로 만들어 본 두 한복 작품), 그리고 활동을 통해 배운 점 (시니어들도 잘 한다 그리고 일을 즐긴다) 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처음으로 옷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그것은 옷감을 사고 옷을 재단하고 만들고 하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활동은 너무 재미있었다. 나의 첫번째 어려움은 바로 시간 싸움이었다. 나는 일과 공부를 하는 틈틈이 옷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늘 시간에 쫓기곤 했다. 서서 밥을 먹는 일은 예사였으며, 대부분 낮 시간이 바빠서 시간을 맞출 수 없었기 때문에 다른 코리언 멤버들과의 미팅도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을 선택해야 했다.

또, 나는 옷을 만들어 본 경험이 없어서 실수를 반복하게 되었다. 이것을 고치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특히, 나는 전통한복을 만들고 싶었는데, 목선을 따라 옷깃을 세우는 부분이 너무 어려웠다. 인터넷으로 옷만들기에 대해 공부하면서, 또, 이미 옷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멤버들의 도움을 얻기는 했지만, 결국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내가 처음부터 원했던 그런 목선이 이쁘게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처음 만든 것 치고는 괜찮았다.

이번 활동에서 그나마 도움이 되었던 것은 과거에 배운 재봉틀 실력이 다시 되살아났다는 것이다. 너무 오랫만에 재봉을 해 보는 것이었지만 20년이라는 세월동안 잊어지지 않은 실력이 정말 놀라웠다. 문제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작업 하는 도중에, 재봉틀이 가다가 멈추기를 반복해 옷 만들기를 제 때에 못 마치면 어떡하지 염려했던 점이었다.

그런데, 이것도 이현아 멤버의 도움으로 해결되었다. 재봉질에서 내가 느낀 어려운 점은 옷감마다 다 성질이 있어서 예상하는 것처럼 박음질이 이쁘게 잘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옷감이 밀리는 경험을 자주 했고, 옷감의 올이 풀려 온 사물에 엉겨붙어 떼내야 하는 경험도 하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곤 했다.

이번 활동에서 내가 경험했던 두 번째 어려운 점은 바로 나의 시력과의 싸움이었다. 물론 안경을 쓰고 작업했지만, 노안 때문인지 도무지 작은 재봉틀의 바늘에 실을 끼울 수가 없었고, 옷선을 이쁘게 박고 싶은 마음과는 상관없이 재봉틀의 바늘땀이 제대로 박혔는 지를 확인하기 위해 안경을 벗고 자주 들여다봐야 하는 수고를 계속했다. 지금까지 나이를 잊고 살았지만 ‘나도 이제 그런 나이가 되었나’ 하는 생각에 잠시 나의 삶과 나이를 돌아보게 됐다. 그러나, 단지 눈이 아른 거려 옷 만들기가 불편했을 뿐, 나이 때문에 이 활동이 어렵다고는 느끼지 않았다.

애시당초에 나는 모임에서 같은 색의 한복을 입기 싫어서 다른 색의 전통 한복을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내 옷만을 만들어놓고 보니 함께 열심히 이 프로젝트를 위해 일하고 있었던 남편에게 미안하였다. 그리고, 또, 평소 남편이 “나도 아무 옷에나 어울리는 한복이 있으면 행사 때마다 입을 수 있는데…” 라는 말을 무시할 수 없어 그 바쁜 시간을 또 쪼개어 나는 다시 조끼 만들기에 도전하였다. 내 옷을 만드는데 들어가고 남은 자투리 옷감을 이용해 남편의 조끼를 만들었는데, 남편의 흐뭇한 얼굴을 보면서 너무 기뻤다.

한번 옷을 만들어본 뒤라 남편을 위해 시작한 두 번째 작업은 훨씬 더 실수를 덜 하게 되었다. 다 만든 남편의 조끼는 내가 봐도 너무 멋있었다. 더군다나 남편이 너무 좋아해 나의 재주도 쓸모가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남편이 얼마나 이 옷에 애착을 갖는 지는 다음에 있을 행사에서 얼마나 옷을 자주 이용하는 지를 보면 알 것이다.

세 번째, 마지막으로 어려웠던 점은 이 옷만들기가 나의 인내심을 실험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나의 욕심에서 비롯되었다. 이 옷 만들기 활동 자체는 몇 달에 걸친 행사로 옷을 완성하기까지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에서는 이 옷을 언제 다 만들지 하는 생각 뿐이었다. 나는 이 활동을 하면서,  내가 얼마나 조급하게 서둘러서 이 옷 만들기를 끝내고 싶어 했는 지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남편의 옷을 만들었을 때, 그냥 재봉틀로 주르륵 박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옷 만드는 노련한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손바질을 하지 않은 채 재봉틀로 박는다는 것은 정말이지 위험천만한 생각이라, 참고 또 참았다.

그런 마음을 억누르고, 오로지 남편의 옷은 내 옷보다 더 잘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실수할 지도 모르는 부분 (예: 어깨선 부분의 안감을 뒤집는 부분)에 미리 손 시침질을 하여 재봉질에 유리하도록 하는 일은 정말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내가 아주 인내심이 뛰어난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 내가 예상했던대로 옷은 잘 지어졌지만-  나는 바늘에 수도 없이 찔리는 경험을 해야 했다. 아무리 안 찔렸어도 열번 쯤은 될 것이다. 남편의 옷은 이렇게 피와 노력이 들어간 결과물이었다.

아무튼, 나는 남편과 함께 다 만들어진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서 보았다. 그동안 고생했던 일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겠지만,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는 순간 조바위가 있으면 훨씬 더 내가 이뻐보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머리속은 온통 조바위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찼다. 결국 나는 조바위 만들기에도 다시 도전하였고 그래서 이쁜 조바위가 탄생하게 되었다.

다음은 이렇게 어려운 점을 극복하면서 내가 어떻게 이 활동을 제대로 마칠 수 있었는 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모임 활동을 멤버들에게 보고 하기 위해서 이메일을 적거나, 또 옷 만들기 진행 사항이나 패션쇼를 연습하기 위해서 이들을 모두 집으로 초대했을 때, 나는 내가 생각했던 옷만들기의 어려운 점들이 모두 사라지는 경험을 하였다. 이들과 함께 활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그래서 아주 기쁜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했다. 너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으나, 몸은 지치지 않았고, 오히려 너무 즐거웠다.

이곳 캐나다로 이민온 이후, 하나의 공동 주제 활동을 두고 이렇게 자주 같은 사람을 여러번 만나기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물론, 포크로라마에서 일했을 때 한국인을 많이 만나기도 했지만, 내가 여러 사람을 나의 집으로 초대해 직접 음식을 만들어 대접했던 것은 처음이다. 패션쇼를 연습하기 위해 우리가 한 회원의 아파트의 레크리에이션 룸에 다 모였을 때는 모두 16이었다. 이렇게 자주 만나 함께 식사하며 이야기도 나누고, 의견을 교환하다 보니 나의 옷 만들기 고민이나 어려운 점은 쉽게 해결이 되었다.

이 활동을 잊을 수 없는 이유는 두 가지: 처음으로 만들어 본 두 한복 작품과 멤버들과의 교류이다. 무엇을 처음으로 한다는 것은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아닌가 한다. 한복을 만들고 조바위를 만들고, 게다가 남편 조끼까지 만들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 되었다. 게다가 옷까지 가졌으니 이 옷을 볼 때마다 이 활동이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이다.

또, 이 활동은 모든 멤버들에게 가족의 추억을 만들어줬다는 점에서 오래 기억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활동을 통해 멤버들은 어려운 점을 서로 이야기 하였고, 더 나은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었으며, 식구들끼리 패션쇼 발표에서의 연출을 놓고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눈 점은 어느 활동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사실, 언제 부부가 함께, 또 아이들과 함께 패션쇼에서 입을 옷을 만들며, 함께 무대 위에서 모델이 되어 걸어보겠는가? 그러한 점에서 멤버들과 봉사자들의 자발적인 옷만들기와 패션쇼에 참여하기는 각 멤버들의 가정에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했을 것이다.

이 글의 마지막으로, 그동안 이 활동을 통해 배운 점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나는 이번 옷만들기와 패션쇼 발표하기 프로젝트에서 나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은 노인들을 만났다. 그들은 무엇을 하든 언제나 즐거워 하였다. 별일 아닌 것에도 서로 하하호호 하고 늘 웃었으며, 좀 힘들더라도 기쁜 마음으로 극복하는 것을 보면서 노인들이 진정으로 생활을 즐긴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노인들은 자신들이 늙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들은 잘 할 수 있다, 앞으로는 더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노인들은 패션쇼에서 젊은이들 못지 않은 댄스 실력을 선보였으며, 건강한 모습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렇게 한국캐나다인 팀과 모두 14개의 다양한 국적을 가진 중국캐나다인 팀이 한 자리에 모인 패션쇼는 그야말로 다문화축제가 되었다. 이 활동을 통해 나는 노인들이 나이를 잊은 채 자신들이 맡은 역할을 진정으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 ‘그래, 인생은 저렇게 즐기는거야. 그래야 늙지 않는 거야.’

이번에 나는 캐나다 연방정부가 실시하는 2016 New Horizons for Seniors Program에 참여하여 한복을 만들면서 옷에 대한 소중함과 함께, 여러 사람들과 교류하고 함께 공동 프로젝트를 하게 된 것을 무척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는 단지 여러 사람들 중의 한명이었지만, 이렇게 40명의 참여자들과 80여명에 이르는 볼런티어를 만나 함께 패션쇼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을 가슴에 품게 되었다. 패션쇼의 날, 체육관을 꽉 메운, 400명 더 되어 보이는 관객들을 보면서 이 프로젝트는 여러 사람들의 정성과 땀이 들어간 자발적인 사회 참여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