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는

한국 부모치고 자식 농사에 욕심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면, 아이들 교육에 관해서 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각자의 교육 배경과 가치관에 따라 나름대로의 교육 논리를 열심히 펼치곤 한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식 농사에 모든 것을 거는 부모들이 참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들의 목표는 한 가지, 오로지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아이를 잘 키우는 지에 대한 방법론에 있어서는 모두 다른 대답을 한다. 어쩌면 다른 대답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것이 정답일 것이다. 그러나, 부모가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자식 농사를 그르칠 수 있는 방향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캐나다에서 늦깍이로 대학 공부를 다시 시작하여, 직접 배우는 학생의 입장에서 많은 경험을 해온 나로서는, 한국과 캐나다의 다른 교육 시스템을 어떻게 우리들 자식 농사에 잘 적용해야 하는 지가 늘 관심사였다.  이 글을 통해, 우리 코리언 집단들이 ‘자식농사’라는 주제에 대해 서로 한 번쯤은 제대로 논의를 해보는 것이 우리 차세대들을 위해서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자식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는 공부하지 않는 아이를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 부모들의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 중의 하나만 소개하자면, 대부분의 한국 부모들이 캐나다에 살면서 한국식 교육을 고집하는 것은 문제다. 캐나다에서는 캐나다식으로 살아야 현실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해결 하는데 좀 더 쉽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 주제 토론을 하는데, 찬반으로 나뉜 각자의 팀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해야 모든 멤버들이 좋아한다. 수줍어서 꽁무니를 빼고 있거나, 다른 멤버들이 무슨 말을 하는가를 듣고 있기만 하면 멤버들은 당황스러워 하며, 이 사람이 제대로 주제에 대해 알고 있으며 토론할 의지나 능력이 있는가를 의심하게 된다. 이 경우 문제는, 적극성의 결여, 자기 주장 및 표현의 부족이다.

이 예에서 보듯이, 한국식으로 사고 하고 한국식으로 생활하는 아이가 캐나다 교육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 한국식으로 공부만 해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평소, 아이가 원하는 방법대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스스로 주체성을 가지고 자기 주장을 할 수 있도록 그 힘을 길러주는 일이 바탕이 되어 있어야 가능하다.

이것은 짧은 시간 내에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해야 할 역할은, 공부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이런 방식의 캐나다 학습과 교육을 이해하고, 아이가 자기의 생각을 조리있게,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정해놓은 틀에 아이를 가둘 것이 아니라 왜 그러한 생각을 하는지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주제 토론에서 미적거리고 있는 아이의 태도는 도대체 어디에서 영향을 받은 것인지 따져 보아야 한다. 이것은 바로 부모의 편향된 교육 방식, 즉 한국식을 고집하는 데서 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한국 부모들은 캐나다식 교육을 받아보거나 캐나다식 교육 방법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에서 경험한 바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이 하면 그것을 해야 ‘마음이 편안해 지는’ 방법을 택하게 되는 것 같다. 아이는 이러한 부모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캐나다로 이민온 부모들은 낯선 캐나다식 교육 방법이나 교육 풍토에 대해 배우거나 시도하려고 하기 보다는 경험에 의한 과거의 익숙한 방법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살기는 캐나다에서 살지만, 늘 한국의 경쟁 문화와 교육을 염두에 둔다. 그러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 부모는 한국을 벗어난 나라에서 살면서도 아이를 부모의 교육 틀에 맞추지 못하면 불안해 한다. 왜냐하면, 부모 자신이 그렇게 살았고, 알게 모르게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 라는 생각을 마음 속에 이미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한국 부모들은 캐나다에 살면서도 한국으로 아이를 보내 선행학습을 받게 한다. 문제는, 아이를 한국으로 보내 공부하게 하는 그 자체라기 보다는 왜, 무엇이 부모로 하여금 아이를 한국으로 보내야 마음이 편안해 지도록 만드는가이다.

잘라 말하면, “아이 잘 되라고 하는 일이죠.”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불안한 부모 자신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방편으로, 또는 자신의 아이가 다른 한국 친구들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아야 마음이 편안해 지고, 남들이 다 하는 것을 시키지 않으면 뒤떨어질 것 같은 불안함을 해소 하고 싶어서는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것이 과연 자식 농사를 더 잘 짓기 위해 캐나다로 이민온 타당한 이유인가를 우리 스스로 물어보아야 한다.

한국식 교육을 고집하는 부모들이 지금부터라도 용기있게 단절해야만 하는 문제는, 점수로써 아이를 평가하는 것, 남의 눈치를 보느라 자기 자신의 생각을 가지지 못하는 것, 공부 주체자가 부모 자신인양 착각하는 것 등이다. 내가 캐나다에서 공부하면서 직접 경험한 바에 의하면, 이 세 가지 문제를 뒤집어보면 캐나다 교육이 가진 장점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부모로서 자신의 아이가 무엇을 진정으로 좋아하는지, 얼마나 그 좋은 일에 몰두하게 만들 것인지, 아이 스스로 얼마나 자신을 알아가게 만들 것인지, 공부의 주체자인 아이에게 얼마나 자율성을 부여하여 스스로 책임을 지게 할 것인지 등이다.

부모의 방식대로 하여, 부모가 원하는 아이로 성장하기까지 전혀 부모 속을 썩이지 않는 아이들도 더러 있기는 하다. 그러나, 많은 한국 아이들이 대학이라는 큰 울타리로 들어가 캐네이디언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아이들과 경쟁하게 될 때, 스스로 얼마나 문제를 잘 해결해 나가는지는 의문이다.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한국애들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선 당장 선행학습으로 점수가 올라간 것에 크게 기뻐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는 아주 큰 착각을 자주 한다. 부모 말대로 아이가 움직여주면 자신이 아이를 잘 키우고 있다고 착각하고, 점수가 오르면 또 우리 아이가 대단한 양 착각한다. 그러나, 부모의 이러한 행동이나 사고방식이 과연 아이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 지에 대해서 미리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과연 부모는 아이가 부모의 방식대로 움직일 경우, 이 방법이 별다른 문제없이 대학 생활이나 사회 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그 능력을 배양하는 최고의 선택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가? 대학을 중도 탈락하거나, 심지어 부모와 심한 의견 충돌로 서로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는 문제로 파생되는 것이 과연 그 아이가 부모의 말을 안 듣고 공부를 안 해서인가?

아니다.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부모가 문제이다. 아이의 문제를 짚어보려면, 먼저 부모가 가진 문제에 대해 짚어보아야 한다. 그 문제는 바로, 부모 자신의 캐나다 교육에 대한 무지, 제대로된 정보를 지원하지 못하는 아둔함, 부모라는 이유로 아이의 자율성을 묵살하는 권위적인 태도, 아이 대신 아이 인생의 주인공이 되려는 과욕 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자유롭고, 개인의 능력을 무궁무진하게 개발할 수 있는 이 캐나다에서 왜 부모들이 한국식 교육을 선호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왜 아이에게 자율성을 주어 스스로 행동하게 하고 스스로 책임을 지도록 하지 않는가? 아마도 한국 부모들은 아직도 공부가 인생의 주연이 되어야 하고, 나머지 일들은 다 별 볼일 없는 조연이라고 생각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돌아보면, 이제는 주연보다 강한 개성을 지닌 조연들이 주연보다 더 빛나는 때가 많다. 아이가 전통적인 부모 순종형이나 복종형으로 살도록 키우지 않아야 한다. 이것을 강요하는 것은, 부모 자신이 캐나다의 교육에 대해서 배우거나 익히려고 노력하지는 않은 채, 자신을 따르지 않는다고 아이만을 닥달하면서 아이 인생을 망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이는 부모와 집밖의 테두리를 벗어나면 캐나다라는 문화를 접해야 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스스로의 주인공으로서 부모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원도 한도 없이 해보게끔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율성을 바탕으로 진정으로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여 행복하다고 느낄 때, 아이들은 부모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 캐나다는 그러한 일들이 가능하도록 해준다. (2016년 12월기사, 글쓴이: Olivia 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