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펠러 신화에는 감동이 있다

 

그는 늘 돈에 배고픈 부자였다. 어떤 돈벌이가 있다는 말을 들을 때 빼고는 웃는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돈을 벌었을 때는 모자를 바닥에 내던지며 의기양양 좋아했지만, 손해를 보았을 때는 금방 병이 나곤 했다.

한번은 가격이 4만 달러나 되는 곡물을 5대호를 경유해 실어 나르게 되었는데, 보험료 150달러가 아까워 보험에 들지 않았다. 그날 밤 폭풍이 엄습했다. 그는 짐을 잃어버리지나 않았을까 몹시 번민했다. 다음날 아침에 급히 보험을 들었다. 그런데 아무런 피해 없이 짐이 무사히 목적지에 닿았다는 전보가 왔다. 그는 150달러가 낭비된 것이 아까워 기분이 좋지 않다고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 몸져누웠다고 한다.

그는 다름 아닌 ‘석유왕’으로 불린 존 D. 록펠러이다. 30세 때 이미 1백만 달러를 가진 부자였고 40세 때 스탠더드 석유회사 창립해 50세 때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오늘날 빌 게이츠보다 무려 3배나 많은 재력을 보유할 정도였다. 그런 록펠러였지만 53세 때에는 150달러의 보험이 아까워 몸져누웠던 것이다. 그는 황금이 축적될수록 불면에 시달렸다. 마침내 의사는 “돈이든 번민이든 생명이든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은퇴하든가 죽든가 둘 중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은퇴를 택했다. 의사는 록펠러에게 번민을 피할 것, 편안히 쉴 것, 조금 더 먹고 싶을 때 그만 둘 것 등 세 가지 규칙을 내렸다. 그는 이 규칙을 철저히 지켰다. 반성도 하면서 남의 일도 생각했다. 이웃과 잡담도 하고 노래도 불렀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얼마쯤 돈을 벌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돈이 사람의 행복을 위해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시카고대가 빚으로 차압 당하자 이를 갚아주었다. 그러자 그는 행복했다. 번민하지 않았고 잠도 잘 잤다. 록펠러 재단은 5000개 교회에 기부를 했다. 50대초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던 그는 98세까지 살았다. 존 듀이는 인간 본성에 존재하는 가장 깊은 충동은 ‘인정받는 인물이 되고자 하는 욕망’(the desire to be important)이라고 했다. 록펠러는 ‘돈의 축적’이 아니라 ‘돈의 나눔’으로 사람들에게 비로소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게 자신도 살고 사회도 사는 길이다.

흔히 록펠러는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적 자본가로 통한다. 독점체제를 구축해 냉혹한 자본가이지만 자선사업가로 가진 돈을 아름답게 썼다.

록펠러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세계 최고 부자가 되었지만, 부자가 된 뒤에도 근검절약하는 삶을 살았다. 더욱이 그는 병원과 대학교 등을 지어줌으로써 미국 최초로 존경받는 자선사업가가 되었다. 돈은 모으기도 어렵지만 돈을 쓰는 것은 더 어렵다는 말이 있는데 록펠러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일기를 쓰듯 평생 회계장부를 꼼꼼하게 썼으며, 수입을 온전히 계산해 십일조를 낸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뒤에는 십일조를 계산하기 위해 별도의 ‘십일조 전담 부서’에 직원을 40명이나 둘 정도였다고 한다.

록펠러가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것은 그의 아버지 윌리엄 에이버리 록펠러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 윌리엄은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소금이나 목재, 말 등을 팔기도 한 장사꾼이었다. 한마디로 속임수와 위조에 능했고 넉살이 좋은 인물이었다. 떠돌이 장사꾼으로 자유분방한 성격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먼저 세상살이의 냉혹한 원리를 가르쳐주었다. 아버지는 세상이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우쳐주기 위해 ‘악당’과도 같은 역할을 자처했다.

록펠러의 아버지는 아들이 성장해서도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점을 가르쳤다. 대표적인 예가 아들에게도 집세와 사업자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은 사실이다. 아버지가 새 집을 짓자 그 집에 살게 되었는데 그 대가로 아버지는 아들에게 집세를 받았다. 악당다운 아버지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미국 최고 부자가 된 록펠러는 미국 기부문화의 초석을 놓았다.

부동산 재벌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는 과연 록펠러 신화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일부 미국인들이 트럼프의 당선에 혐오감을 드러내는 것은 그가 살아온 길에서 감동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 아닐는지.

❚ 최효찬 박사: 경향신문 기자 역임, 삼성경제연구소 SERI CEO에서 ‘명문가 위대한 유산’을 주제로 강의 중. 2011년 ‘한국의 저자 300인’에 선정. 저서로는 우리나라와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과 독서교육 비법을 명쾌하게 분석한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독서교육』(2010 문화체육 관광부 우수교양도서) 등 다수의 저서가 있음. 최근 『현대 명문가의 자녀교육』을 출간. http://cafe.naver.com/apluschild